희귀질환인 혈우병 중에서도 '극희귀응고인자결핍'을 가진 환우들에 대한 치료제 공급이 공전만 거듭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임모군(9세)은 13개로 알려진 혈액응고인자 중 10번 응고인자 결핍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8번과 9번인자 결핍이 대부분인 혈우병의 분포에 있어서 1번, 5번, 7번, 10번 등의 인자결핍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희소하며, 특히 10번인자 결핍은 우리나라에 단 두 명만이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장 드문 경우이다. (몇년 전까지 세 명이었으나 한 환우는 치료제를 찾아 해외로 이민 간 것으로 알려졌다)

▲ 전통적 의미로서의 혈우병은 약 88%를 차지하는 8, 9인자 결핍이지만 나머지 기타응고인자결핍질환에 대한 관심도 절실한 상황이다. (@2017 혈우재단 백서. 클릭하면 확대)

임군은 유아기때 뇌출혈을 겪고 지혈이 잘 되지 않아 10번인자결핍증을 진단받게 되었고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전전하다가 궁여지책으로 혈우병 항체환우의 치료에 쓰이는 혈장유래 복합제제 '훼이바'를 투여했다가 겨우 지혈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8, 9인자에 대한 항체를 가진 환우들을 위해 기타인자들로 우회효과 노리는 훼이바의 특성상 균등하진 않지만 소량의 10인자가 포함되어 있어 임군의 지혈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훼이바를 투여했던 해당 치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병원측에 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이른바 '삭감'처분을 받음으로 해서 의료진도 환우가족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역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후 임군의 치료에도 훼이바를 사용할 수 없었다. 훼이바의 적응증에 10인자결핍증은 포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는 약이 있는데도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우가족으로서는 '차라리 약이 없는 것 보다 못한'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약품의 적응증 추가를 위한 노력도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영국의 한 제약회사에서 2015년 코어가덱스(Coagadex)라는 10인자결핍 전문치료제를 출시한 것이다. 극소수의 환우를 위한 약품이긴 해도 국제 혈우사회 안에선 적극적인 도입노력이 이어졌고, 이 제제를 이용한 10인자 환우 치료사례도 논문으로 속속 보고되었다. 임군의 주치의인 계명대 동산의료원 심예지 교수와 가족들도 이 약품에 주목하고 다시 한 번 치료제 공급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올해 4월 세계혈우인의날을 맞아 국회에서 진행된 정책간담회에서 임군의 부모는 직접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 앞에 나와 극희귀응고인자결핍을 위한 치료제 도입을 촉구했다. 모든 패널들이 필요성에 공감했고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들은 '정식으로 수입되기 어려운 치료제는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조언까지 보태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 올해 세계혈우인의날을 기념해 한국코헴회와 전현희 의원이 함께 주최한 정책간담회에서 임군의 부모가 가족이 처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전에서의 약품도입 과정은 정부관계자들의 '탁상 위에서의 호언'에 전혀 미치지 못할 만큼 순탄치 않았다. 가족과 주치의, 혈우병 환자단체 한국코헴회는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10인자 전문치료제의 존재여부와 FDA자료를 바탕으로 한 안전성 검증을 마쳤다. 그런데 희귀의약품센터에서는 식약처의 약품허가를 필요로 했고, 식약처는 복지부와 심평원이 논의하여 '긴급도입인정제도'를 요청해야 허가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즉, 복지부와 심평원이 이 약품에 대해서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확답을 하고 긴급도입을 요청해야 약품허가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키를 쥔 것으로 보이는 복지부 보험약제과는 한국코헴회와의 통화에서 '해당 약품에 대해서 희귀의약품센터가 요청공문을 보내와야 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으로 다시 공을 센터로 돌리면서, 이 문제가 희귀의약품센터, 식약처, 복지부(심평원)의 책임 떠넘기기, 답없는 핑퐁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담당자간 책임있는 논의를 주도하기는 커녕, 중간에 있는 환우가족과 환우단체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보시라'라고 조언 아닌 조언만 툭툭 던지고 있어 더욱 한심하다.

▲ 환우와 가족을 사이에 놓고 보건당국이 벌이고 있는 책임 떠넘기기는 흡사 피구왕 통키에 나온 '오복성패스'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측에서 이 문제(적어도 '새로운 치료제 도입' 문제)를 폭탄돌리기 하고 있는 이면에는 비용에 대한 부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 가장 적합한 10인자 치료제로 볼 수 있는 코어가덱스 제제를 임군에게 유지요법 수준으로 투여하기 위해서는 성인 8인자 환우 1명 치료비의 수 배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에 임군의 가족들은 '꼭 그 약만을 쓰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전문가들이 제시해달라'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코헴회 이남일 선임간사도 식약처장 출신의 김승희 의원실을 방문해 도움을 청하면서 "기관들이 환자를 희망고문하며 서로 책임만 떠넘길 게 아니라 진지하게 다자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밝히고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얼마가 들던지간에 보건당국과 함께 이 문제를 끝까지 풀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 동산의료원 심예지 교수가 희귀의약품센터측으로 보낸 해외약품조사 의뢰서

혈우병은 인구 1만 명 중 한 명꼴로 가지고 있는 희귀질환이다. 그리고 10인자 결핍은 전체 혈우병 등록환자 중 1천 명에 한 명 꼴인 단 두 명이 존재한다. 혈우사회가 사회 전체를 향해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면서 내부의 극희귀인자결핍에 대해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혈우사회는 임군으로부터 비롯된 기타출혈질환 환우들의 문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하며 희귀의약품센터와 식약처, 복지부 보험약제과는 환우가족을 우롱하는 핑퐁게임을 즉각 중단하고 책임있는 논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