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교 이영득 교수

지난해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단어 중의 하나가 ‘케미포비아’였다. 화학물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과 선입견이 커졌다. 특히 음식물과 관련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감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음식물과 관련된 화학물질 중,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고 두렵게 여기는 것은 농약일 것이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농약을 사용할 때, 농산물 속 ‘잔류농약’에 대한 불안감은 항상 높은 수준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나라의 잔류농약 안전성 강화 대책은 과학적이고 철저한 기준에 따라 수립된 상태다. 농산물 생산이력제(GAP)를 도입해 농산물의 생산 과정에서 사용된 농약 성분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으며, 현재 견과류, 종실류, 열대과일류에 대해 적용되는 농약허용물질관리제도(PLS) 또한 2019년부터 모든 농산물로 확대된다.

이 같은 농약 안전성 관리제도의 기초가 되는 것은 농약 잔류허용기준(MRL)이다. 1970년대 미국, 유럽 등에서 채택된 잔류허용기준은 농약 자체의 독성과 노출량의 관계를 통해 잔류농약의 위해성 수준을 과학적으로 평가해 안전성 확보 수준을 도출하는 체계이다. 국가별 농약 잔류허용기준은 전문가들이 단순히 수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실험 결과에 의하여 설정되므로 경제력과 연구능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자체적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선진 여건이 갖추어진 1980년대 후반부터 비로소 자체적인 허용기준 설정체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농약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은 만성독성 평가로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개별 농약마다 최소 2년 이상의 실험동물 실험을 통해 농약의 만성독성 수준을 평가하는 최대무작용량을 산출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일섭취허용량을 설정한다. 한편 병해충에 대한 약효를 고려하여 농약 안전사용기준을 설정하며 이러한 기준 내에서 실제 잔류량 실험을 통하여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된다. 이 같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관리 체계 덕분에 농약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게 될 경우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할 수 없다. 또한 여러 농작물에 모두 사용되는 농약의 경우에도 각 농산물별 허용기준에 근거하여 최대섭취량(TMDI)을 계산하고, 농산물 중 허용 상한선인 일일섭취허용량의 80%가 초과하지 않도록 농약 사용 허가 농작물의 수를 제한한다.

이러한 잔류허용기준은 농산물의 출하 또는 통관 시점에서 이미 적용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농작물 구입 시점에서는 잔류농약 안전성이 이미 확보된 상태로 판매가 이루어진다. 이 같은 과학적 기준과 근거에 기반한 우리나라의 농약 안전관리 체계는 농약관리법, 농수산물품질관리법, 식품위생법 및 그 시행령 등 국가 법률 단위에서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현재의 잔류농약 안전성 관리 체계 하에서는 소비자들이 농작물 섭취 시 잔류농약으로 인한 위해성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과학적 근거에 따라 인체에 대한 영향력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물이 현재의 안전성 관리 체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점은 소비자들의 의식 전환, 그리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의 안전성 및 기준 준수에 대한 의지인 셈이다. 적어도 ‘잔류농약’에 대한 불안감은 이제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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