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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테마연재]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 이강욱 기자 편유일하게 날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바로 “친구”
이강욱 객원기자  |  hemo@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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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3  17: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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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바다와 맛있는 물회(이정도면 평생 꼬리표)가 있는 포항에 살고 있는 올 해 계란 한판 서른살 된 이강욱 입니다. 직업은 사회복지사이구요. 8인자이며 중증환자입니다. 2012년 관절경 수술을 하며 코헴회와 인연이 닿게 되었고, 그 덕으로 많은 형, 친구, 동생들을 알게 되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 대구경북지회 청년입니다!

◇ 어린시절을 보낸 동네는 어디인가요?

경상북도에 있는 바다도시 포항시 북구 대흥동에서 태어났구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사간 적 없이 쭉 여기서 살고 있어요. 동네친구들이 많이 떠나서 아쉽지만 동네친구들에겐 추억의 기둥으로 굳건히 동네를 지키고 있답니다.

◇ 제일 의지가 되는 사람은 누구였나요?

보통 가족이라고 많이 대답할 것 같은데 전 아무래도 친구였던 것 같아요. 비록 친구들에게 제가 혈우병 환우라는 걸 밝히지 않았지만(이제 조금씩 조심히 알리고 있어요^^) 어릴 때 혈우병에 대해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어요. 그냥 보통 아이들과 같이 함께 뛰어다니고 놀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죠. 하지만 가족의 입장으로선 제가 혈우병을 가지고 있기에 항상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어 항상 걱정을 끼쳐드리는 부분이 많았어요. 또 어릴 땐 자가주사나 예방요법에 대한 방법을 모르고 있었고 또래아이들보다 키도 작고 체중도 적게 나가서 지금 생각해보면 더욱이 심려를 끼쳐드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 나름대로도 그게 스트레스 였죠. 저는 그냥 평범한 아이고 다른 아이들과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넌 다른 친구들과 다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된다” 친구들과 어디간다고 하면 무조건 “안된다” 부터 먼저였으니깐요. 부모님은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였지만,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는데 많은 제제가 있어 나름 저에게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혈우병 환우라는 걸 밝히지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더욱이 의지하게 되고 자주 만나려 하고 소통하고 같이 어울려 다녔던 것 같아요. 집안에서, 병원에서, 혈우병을 떠나서, 유일하게 날 평범한 사람으로, 동등한 입장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바로 “친구” 였으니깐요.

   
▲고등학생 때에요 같은 과 개구쟁이4인방이 모여서 한컷찍었네요 저때생각하며 장난쳤던걸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나 사건은?

특별한 사건은 아니지만 제게 특별한 장소이며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곳은 집 앞에 있는 작은 산이에요. 바로 탑산이라는 곳인데 집에서는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구요 산에 올라가는 입구에 갈려면 약 7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에요. 맨 꼭대기에 올라가면 포항의 전경이 다보여요 밤에 올라가서 보면 더 예술이죠. 또, 거긴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이 있어요. 어렸을 땐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몰랐지만 중학생 일 때 6.25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들을 기리는 곳이란 걸 알게 됐어요. 영화 “포화속으로(2010)”의 포항여중 전쟁터가 바로 이곳에 있던 것이죠. 아무튼, 이곳은 집 앞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렸을 때 여러 이유(?)로 참 많이 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 안되지만 학생 때 부모님 몰래 친구들이랑 술 한잔했던 곳도 이곳이구요. 인근 학교가 많아서 당시 여러 미팅도 여기서 했던 것 같아요..ㅋㅋ산꼭대기에 같이 올라가며 서로 마음을 확인했답니다..ㅋㅋ또 혼자 열심히 운동하러 가던 곳이기도 하고요. 답답한 일이 있거나 속상한일, 슬픈 일, 화나는 일,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혼자 이 산에 올라가 포항의 전경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던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무릎이 많이 안 좋아져서 자주 못가지만 컨디션 좋을 땐 한번 씩 올라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 같아요. 여러 사건도 많았지만 말하면 곤란한 것들이라 정말 궁금하시면 제게 찾아와주신다면 속 시원하게 다 말씀드리겠습니다!^^..하하.. 아무튼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이자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입니다. 포항에 놀러오면 꼭 한 번 와보세요! 시내랑 그리 멀지도 않고요. 와서 포항에 있었던 전투에 대해 알아보고 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 같습니다!^^(이정도면 포항 홍보대사)

◇ 가장 소중했던 보물은 이유는?

가장 소중했던 보물이라.... 보물은 따로 없고요. 그냥 저에게 보물이라 함은 추억인 것 같아요. 굳이 물품으로 얘기하자면 어렸을 때 함께 누구든간에 같이 찍어두었던 사진인 것 같구요. 한 평생을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동네 하나하나 다 추억이 깃들어 있어요. 추억으로 먹고 사는 놈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즐거웠던 일들을 회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웃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보물로 따지자면 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 같아요.(돈으로 따지자면.. 한 1조를 준다면 리셋할 의향이 있네요.. 이런.. 기회주의자..)

   
▲중학교 수학여행 입니다. 딱봐도 개구쟁이같이 생겼죠? 저땐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즐기고있네요 지금은 엄두도 못내겠지만

◇ 건강은 어땠죠? 출혈도 많이 있었어요?

건강은 당시 예방요법도 몰랐고 자가주사를 하는 방법을 몰랐었지만 많은 출혈은 없었던 것 같아요. 또 나름대로 운동을 열심히 해서 웬만한 타박상 외에는 별 출혈이 없었고 정말 크게 타박상이 있거나 자주 출혈 났던 발목을 제외하고는 일반 친구들과 똑같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지 저 나름 보통 친구들 보다는 내가 더 건강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딱 봐도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이처럼 생겼었거든요. 그저 항상 뛰어놀기 바빴죠.. 그래서인지.. 요즘 관절들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ㅋㅋ 어렸을 때 에너지를 너무 땡겨썼나봐요..ㅎㅎ

◇ 몸은 아팠지만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견딜 수 있었던 것이라..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자주 아프던 발목에 출혈이 나서 방치해두면 그러면 안되지만 정말 발목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근데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아 약을 맞으면 괜찮아지겠다. 생각해서 그저 어머니가 퇴근하시기만 기다리다 약을 맞고 괜찮아지고 그랬죠. 그래서인지 주사를 맞으면 다 괜찮아진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아 내가 나쁜 약을 하는 사람들과 다를게 뭔가.. 그저 부정정인 생각들 뿐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저는 다른 사람에게 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 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출혈나서 절뚝 거리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냥 저는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을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저는 자연스레 웃는 모습이 기본 옵션으로 얼굴에 장착이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자주 출혈났던 발목이 미칠 듯이 아파도 절 걱정해주는 사람을 보면 그저 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바보같아 보이지만 그게 제 안에 다짐이 아닌 다짐처럼 새겨져 있나봐요. 내 주변사람들이 있음에 제가 있는 거니까 제 사람들에게 그저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어린시절 꿈은 무엇? 이유는?

뭐 지금은 터무니 없지만.. 당시 어렸을 때! 꿈은!ㅎㅎ 축구선수 아니면 종합격투기 선수였어요..ㅋㅋㅋㅋㅋㅋ 어렸을 때 운동을 너무 좋아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운동을 하다가 알배기(근육통증은 전혀 없었어요!)면 아프다거나 거슬려서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알배기는 게 너무 좋았고 즐겼던 것 같아요.(약간 변태같나요?ㅋㅋ) 그리고 땀을 흘리며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또 축구선수는 여러 영향이 많은 데요. 아버지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공차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또 축구국가대표 경기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종합격투기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체육관을 다니면서 생각을 했었어요. 당시 어머니가 완강히 반대하셨었지만 상대와 절대 겨루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체육관을 다녔어요. 하지만 몰래몰래 겨루기를 하면서 종합격투기 스포츠맨십에 빠져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종아리를 단련하다 정말 뼈가 부러질뻔하여 포기를 했었답니다...ㅋㅋㅋ지금은 그저 어렸을 때 가졌었던 꿈으로 생각하고 가슴에 품고 살고 있어요.. 티비를 보다 격투기나 축구장면이 나오면 울컥울컥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가슴에 품고 즐겨본다는 생각으로 보며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전 정말 다시 태어난다면 팀에 꼭 필요로 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 대학생된 후 생일파티모습이에요 제 바로 위에 있는 친구랑 생일 하루차이라 매년 같이 행복한 생일을 보내고있답니다. 아직도 저친구들이랑 지겹도록이요..ㅎㅎ

◇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이유는?

음.. 돌아가고 싶은 때라.. 딱 두가지 때가 떠오르는데요. 첫 번째는 초등학교 때 인 것 같아요. 당시 어머니가 코헴회캠프를 가보라고 몇 년 동안 계속 권유를 했었지만 저는 혼자가는게 그저 두려웠어요. 또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그런 곳에 간다는게 낯설기도하고 두렵기도 하고 싫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조금만 더 용기내어 갔었더라면 거기서 같은 환우들끼리 친구도 사귀게 되고 형들도 알게 되고, 또 더불어 자가주사나 예방요법 같은 방법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제 인생이 윤택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지금만으로도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두 번째로는 19살로 돌아가고 싶어요. 당시 대학교를 가느냐 아니면 직업학교를 가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지만 그 때 저는 부모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제 곧 성인이 된다고 부모님이 저 하고 싶은 걸 하기를 내버려뒀었죠. 그래서 알바를 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그게 너무 즐거워 미래에 대한 생각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돌아간다면 놀기는 놀되 미래에 대한 내 선택을 좀 더 걱정하고 계획을 세워놓고 즐겨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만족한답니다.^^

◇ 올 봄 내 건강, 어떤가요?

올 봄 제 건강은 적신호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위 형들이 30대가 되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아프던 데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일이 제게 올지 몰랐어요. 괜찮았던 관절들이 많이 안 좋아져서 조금 힘이 듭니다. 하지만 마침 제가 이직으로 인한 한 달 휴가가 생겼어요. 이 휴가를 통해서 여러 치료법과 운동을 통해 건강한 30대를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해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30대 청년환우들 퐈이팅 퐈이야!~

◇ 어린시절에 대해 못다한 말, 있다면 해주세요

어린시절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니 뭔가 홀가분 하고 홀로 시간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아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헤모라이프 기자단에게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린시절에 대해 못다한 말을.. 다 쓰자면... 책으로 내야될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모르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거나 혹은 곧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환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찢어질 듯이 가난했고, 늦은 예방요법으로 인해 출혈이 심해 다리를 끊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다 흘러 지나가고 제겐 행복했던 기억들 밖엔 없어요. 물론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땐 그랬었지 하며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환우 형, 친구, 동생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용기내서 지회 모임이나 여름캠프에 참여해서 여러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절대 혼자가 아니란 걸 전해주고 싶고 항상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또 조금만 참으면 재밌고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겨날 것 이고 분명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 여러분 웃으며 삽시다! 그리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헤모라이프 이강욱 객원기자]

   
△지난 겨울 헤모라이프 객원기자단 윈터미팅때입니다. 아래쪽 '미'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강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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