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오피니언
야! 혈우사회(부제: 靑年)③
김영기 칼럼니스트  |  younggi70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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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4  23: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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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들의 이야기 '무한동력'(연합뉴스=헤모필리아라이프 제휴) 이재희 기자 = 배우 오종혁(오른쪽), 정우연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무한동력' 발표회에서 작품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원작인 이 작품은 7월 1일까지 공연된다 ⓒ참고사진

얼마나 많은 작가들과 세계적 문호들이 청춘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찬미했을까. 바로 생각나는 작품이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로 시작되는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다. 학창시절에 교과에 실린 이 수필을 읽고 가슴이 터져버린 줄 알았다. 무려 1930년에 쓰여진 이 글은 나로 하여금 이글거리는 가슴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마침 이 시기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의 만남은 타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였을까. ‘피 끓는 청춘을 마당에 묶어두려는 건 바람에다 밧줄을 거는 짓과 다를 바 없다’는 글을 본 것이다. 바람이라는데 결코 가만있을 수 없었다. 향후 내 고향 5개시 17개군 단위 중 5개시 16개군을 각 1박 2일 일정으로 유랑하고 옆 고향의 절반의 행정구역도 돌아본 계기가 된다. 가외로 스스로 말인 줄 알고 상당한 시간을 제주도에서 유목민의 방랑을 즐기기도 한다. 청춘은 그런 것이다. 이제 나이가 내 몸에서 정열을 꽤 뽑아가버린 지금도 청춘은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세 번째 글은 그 시절을 살아낸 한 사내가 생의 한 가운데(중년)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코헴회 청년들에게 띄우는 ‘부드러운 개입(넛지nedge)'정도로 읽히면 좋겠다.

청년의 특권은 ‘전복적 사고’다. 부드러운 표현으로 ‘비판적 사고’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를 ‘요즘 늙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로 비틀 줄 알아야 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 제목이 유행하면 아프면 병원가라고 외칠 줄 알아야 한다. 한번은 뒤집어야 진실에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 청년들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자주’, 기성세대와 기존 질서에 몸서리쳤다. 안으로는 ‘민주화 운동’이 그랬고 밖으로는 ‘68운동’이 그랬다. 거대 담론이라고 외면하면 좀 편할지 모르겠다. 작든 크든 추동의 힘은 변화에의 갈망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 김난도 /출판사 쌤앤파커스 /출판일 2010.12.24

코헴회 청년들은 ‘가끔’이라도 그러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먹는 나이가 성찰의 무게를 감당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경험의 축적이 지혜의 거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고 일반화해버리면 “아닙니다”라고 득달같이 달려들면 좋겠다. 나이의 무게는 권위의 뼈다귀만 남겼고 경험의 축적은 폐습의 악취만 풍겼다고. 지속가능한 코헴회는 근원적인 ‘왜’를 묻지 않고는 담보될 수 없으며 그 추적은 청년들이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프로파간다 요소가 다분하다.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은연중 젖어든 학습된 비관은 은밀하고 농밀하며 침윤이 넓고 깊다.

운동선수들은 대게 30대면 은퇴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의 체력이 정점에 이르는 때가 보통 20대이니 말이다. 대게 사회운영의 시스템은 60 전후에 은퇴한다. 그것은 사람의 지적 능력이 예순 전후까지 고스란히 유지되거나 심지어 젊었을 때보다 더욱 벼려진다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 능력 역시 보통은 20대 때가 전성기다. 길게 잡아야 30대 전반 정도. 무엇보다도, 정신 능력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육체 능력에 의존한다. 어떤 영역에서는 이 둘이 뚜렷이 구분되지도 않는다.

물론 정신 능력과 육체 능력은 많은 점에서 다르다. 대표적으로 개인차를 들 수 있겠다. 개인차라는 것도 그 사람의 자라온 환경, 스며든 지적 활기, 열려있는 마음 상태에 따라 곡선이 심하게 요동 칠 것이다. 정신 능력의 고갱이라 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 능력이라는 것도, 나이와 함께 무뎌진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나이와 함께 더 벼려지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은 너무나 자명해서 주위에서 자주 목격할 것이다. 특히 코헴회에서 평균이상의 출현은 괴이함을 넘어 몹시 추레하고 비루해 보인다. 이른바 꼰대는 매력적이지 않은데, 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나이드신 분들이 장년기, 노년기에 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 어느 순간 자신이 이룬 업적에 기대어, 심지어 업적이랄 것도 없이 그저 연장자에게 유리한 풍속에 기대어, 너무 많은 힘을 누리고 있는 ‘원로들’을 보는 것은 개운치 않다. 이것은 또 나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직 50줄에 이르지 않았지만, 또 한낱 유전적 결핍의 당사자에 불과하지만, 나 역시 20 ∼ 30대 청년들의 몸짓과 활동성에 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들은 바틈업(bottom-up) 방식에 익숙해서 톱다운(top-down) 방식에는 견디질 못한다. 해서 지금의 알량한 나이를 앞세워 내 무딘 재능으로 그런 빛나는 재능들을 ‘지도’하려는 꿈을 꾸고 있지 않듯, 나는 나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들어서도 나이를 내세워 그들의 판관 노릇을 하지 않으려 한다.

   
▲ 만하임 [Mannheim, Karl] 1893년 ~ 1947년/ 사회학자 ⓒ지식백과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삽 더 파보자. 독일의 철학자 카를 만하임의 말대로, 세대는 객관적 조건인 세대상황 외에 집단의식과 소속 감정 및 행위 양식에 비롯된다고 했다. 세대는 그저 공통의 연령집단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자기인지와 차별화의 결과물이란 것이다. 집단의식과 소속 감정은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의식하면서 자라나고, 집단적 행위양식은 그 차별화 과정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이라는 부연 설명이다. 코헴회 청년세대는 카를 만하임의 말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우리 세대는 외면적 환경과 물질적 복리에 만족했으나, 청년세대는 달라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불합리가 용인되고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에 순응하고 오래된 질곡을 메울 수 없으며 거만의 권위주의를 걷어 찰 수 없다. 이제 기존의 삶의 양식과 태도와 가치 전체를 문제삼아라.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어느 조직에서든 한 개인이 지닌 발언권의 양은 그가 누리는 권력의 양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고. 누워서 감 떨어지길 바랐다면 오판이다. 다시 카를 만하임의 말을 해석하면, 세대는 청년기의 강렬한 사회적 대면과 사회화만으로 온전히 지속되지 않는다. 청년시기 이후에도 계속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공동체화’ 과정이 필요하다.

코헴회에 곁을 둔지 얼마 안됐을 때다. 지회모임에서 발언도 하고 비판적 시각을 노출했으며, 이랬으면 좋겠다는 대안도 말했다. 단지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더해지면 최종결론이 더 타당해진다는 믿음이 있었고 공동체가 가진 힘은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이 공간이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신뢰에서 시작했다. 반응은 놀랍고 충격적이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가만히 있어라”, “건방진 놈”, “코헴회을 모르는 놈이 너무 나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각기 3명의 뜻을 전한 거였는데 전하는 방식이나 태도의 비굴함, 해명의 삿됨을 잊지 못한다. 이처럼 마음이 데일 수도 있고 상처의 딱지가 오래 갈 수 있으며 외롭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개인기’로는 너머를 볼 수 없고 세대의 ‘공동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코헴회는 물리적으로 30년이 됐다고 한다. 이즈음 ‘더 나은 코헴회는 가능하다’며 새로운 동원과 연대와 결집을 강조하는 일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이 일을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능력과 코헴회의 개입 의지가 확고한 청년들이 앞장 서 해주면 좋겠다. 오늘날 코헴회에서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기성세대가 안겨준 두려움과 소심함을 극복하고 주어진 삶의 조건과 악습에 균열을 내는 용기다. 기존 질서와 권력관계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복종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 말이다. 이런 작은 삐딱함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연관성과 상호작용을 믿어야 한다. 두려울 것이다. 밥 딜런의 ‘시대는 변하기 때문에’(The Times They Are a­-Changin')나 강산에의 ‘삐딱하게’를 들어보라. 쉼표가 될 것이다.

   
▲ 남북 합동공연, 울먹이는 강산에(연합뉴스=헤모필리아라이프 제휴)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 공연에서 강산에 씨가 노래 중간에 돌아가신 이북 출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고 있다 ⓒ참고사진

중년세대 이상에는 ‘고려장’이냐고 서운할 수도 있겠다. 코헴회는 우리 모두의 총체적 연관성 속에서 현전한다고 믿는다면 요즘 젊은이들을 우려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다른 눈으로 봐줄 것을 권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격언은 적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년이 코헴회를 발전시킨다면, 중년(노년)은 코헴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시간 앞에서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근 ‘미투’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대는 동시적 전이를 통해 더 큰 폭발력을 갖는다. 순조로운 발현은 행동으로 시작된다. 꿈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겠지만 간절한 소망을 또다시 청년들에게 품어본다. 주머니 속에 송곳 하나쯤 벼르고 코헴회 청년들이여 모여라! 모여서 치열하게 토론하라. 그리고 뜨거운 인간애를 가져라. 가능성만으로도 희망이 절망보다 가까운 이유이다.

[김영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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