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오피니언
야! 혈우사회(부제: 父母)②
김영기 칼럼니스트  |  younggi7070@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13  22:00:4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작은 제목을 부모라 했지만 많은 부분 여성(이라 쓰고 어머니라 읽자)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적으로 미투(#Me Too, 나는 고발한다)운동이 뜨겁다. 진심으로 위드 유(#With You, 너와 함께)에 공감하며 심연의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울분은 제어할 길 없다. 소위 진보임내 하는 작자들의 이중성에 기함하고 있을 뿐이다. 생활 진보가 담보되어야 대외적으로 당당 할 수 있음을 장삼이사인 우리도 안다. 생물학적 성으로 어떤 차별과 피해는 없어야 한다. 이건 태어나면 당연이 누려야할 천부인권의 문제이다.

   
 

코헴회의 태동기는 어머니들의 수고를 빼면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겠다. 원죄의식에 커가는 자식들의 고통을 보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방편으로 조직적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고. 쉽게 얻은 권리는 쉽게 허물어지지만, 투쟁으로 획득한 권리는 오래간다는 명제에 대입하면 오늘날 이 만큼의 사회적 발언권도 여성들께 빚진바가 크다. 양가적 감정이야 있겠지만 이 분들의 심리적 아픔은 짐작 할 수도 없다. 아마 인간(자식)에게 불(생면잉태)을 선물했다고 코카서스 산 정상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프로메테우스 아픔일거라 헤아려 볼 뿐이다. 이 정도면 자기 자식문제이니 그리 했을 거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들이 꼭 있다. 과연 그런가. 생물학을 넘어 서보자.

코헴회는 우리 집단의 계층군을 절박하고도 표나게 집약하는 핵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반인 여성도 코헴회의 반을 차지해야 마땅하다고 하면 돌 맞을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접촉면을 좁게 가져갈 하등의 이유도 없다. 직시하자면 한국사회는 모든 공적 영역에서 여성은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는데, 거기에 코헴회까지 거들건 없기 때문이다. 지면을 채워야하니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낡은 풍습으로 알고 있는 몇 가지을 일별해 보자.

여성의 동선은 전통적으로 가족과 집안 살림이라는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했다(지금 읽고 있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보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공적 영역으로서 나와바리(?)는 무엇보다 남성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공적 남성’과 ‘사적 여성’이라는 성 역할의 공간적, 지리적, 분할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여성의 여성만의 독특한 책임 영역’을 근거로 정당화 되었다.

실상, 사회의 모든 영역을 일관하는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그래서 너무나 상투적인 말들과 행동들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해부학적 차이는 숙명이라고 보는 견해 말이다. 즉 여성과 남성은 각자의 해부학적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사회화됨으로써 지위와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할된 역할 가운데 남성의 역할은 더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여성의 역할은 하찮게 여기는 태도를 코헴회에서 종종 보는 것은 슬픔일이다. 예를 들면 서경지회에서 어머니들은 지회임원에 배제하겠다는 아집이나 WHF 참가자중 대표 여성이 없는 점이 그렇다. 당사자성을 말하더라도 규칙의 제,개정, 운영에 국한해야지 폭을 넓혀야하는 참여의 문제에는 상당히 부적절해 보인다. 진일보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변화를 원하고 협업을 말하는 시대이다. 그 일단으로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 성(섹스)과 사회적 성(젠더)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정체성은 그들의 성 역할 곧 젠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지 생물학적 성에 직접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을 ‘젠더 감수성’이라고 한다면 코헴회의 수준은 낙제점에 가깝다. 코헴회가 압축 성장은 가능해도 압축 성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우리의 배려가 자신이나 직계가족 바깥으로까지 번지는 법은 거의 없다는 일반론을 들먹인다면 할 말이 없다.

상처가 있는 사람만이 남의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법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 내면의 상처가 타인의 상처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나 속 깊은 배려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타인에 대한 지나친 공격성이나 극심한 이기주의로 굴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개개인들의 기질에 달린 것일 터이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병은 죄악이 아니고, 유전적 결핍은 설득으로 없앨 수 있는게 아니다. 그렇다면 발현되지 않는 유전 형질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배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당위로는 우리는 문화와 문명을 건설한 인간이기 때문이고, 균형 속의 길항에서 소수를 위한 변호로 아주 오래전 생각의 전환을 고백함이다. 코헴회가 이 길에 나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 ‘안부’를 묻고 ‘위로’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몇 주 전 어머니 1주기였다. 작년 이만 때, 일을 치르고 국회에서 열린 ‘혈우인의 날’에 참석하려고 잠시 상경했던 일이 있었다. 부고를 알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조의를 표하거나 부의금을 전해주는 얼굴들을 기억한다. 따스했고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우리 모두는 한 여성의 탯줄을 끊고 이 땅에 왔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연결의 ‘창조주’를 힘들게 하지 말자. 더는 나,들의 어머니들을 ‘바깥’에 서 있게 하지 말자. 그들은 ‘창밖의 여자’가 아니다.

곧 5월이자 어버이 날이다. 나 같은 사람은 카네이션 드릴 이 하나 없다.

[김영기 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 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김영기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등록번호 : 서울아02245  |  대표 : 박천욱  |  편집인 : 김태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성연
전화 : 02-535-6474  |  문의 및 제보 hemo@hemophilia.co.kr
Copyright © 2012 헤모필리아 라이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