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모IN헤모국제
나의 첫번째 순간들아버지가 말해주는 혈우병 아기 출산의 순간
황정식 기자  |  nbkiller@hanafo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13  21:50:1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보통 소아의 혈우병 관리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어머니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것, 아버지에게도 출산의 순간과 첫 진단을 받았을 때의 기억은 지울 수 없는 기쁨이자 재앙인 것이다. 하지만 카잔드라(Cazandra)씨의 남편인 “조 맥도날드(Joe McDonald)”씨는 이러한 재앙도 인생의 변화의 순간이라고 받아드리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아버지가 느꼈을 우리의 출산 때의 기억을 경험해 보도록 하자.

#  #  #

삶을 살아가면서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을 순간들이 있다. 삶에서 때때로 우리는 목표를 달성함에 기쁨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을 나눌 때의 기쁨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숨죽이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재앙을 경험하고 또 그를 극복해야 할 일도 겪게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무엇이던, 세계는 변하고 있고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 출산의 순간은 부모에게 인생의 큰 변화를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조 맥도날드씨도 순간의 변화를 느꼈지만 그에게는 한가지 더 큰 변화가 있었다.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나는 내 아내가 될 사람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를 기억한다. 그 순간, 나는 이 여자가 나와 함께 평생 같이 할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이러한 순간을 “절대 명료한 순간”이라고 부른다. 그 순간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일어나곤 한다.

결혼 3년 정도 지난 후 우리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여정을 새로 시작하기로 동의한 순간이었다. 내 아내는 곧 임신을 하게 되었고 우리의 첫 아이를 집에 들인다는 믿을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와 매일 밤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을 때 그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이러한 삶은 매우 평범했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곧 바뀌게 되었다.

내 아들은 휴스턴의 폭풍이 치는 밤에 세상에 태어났다. 변압기에 번개가 떨어지고 에어컨을 포함한 전기도 나갈 무렵 수술실에서 10명의 사람과 함께 아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 환상적인 작은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기적같이 전기가 다시 들어왔고 다시 들어온 조명에 그의 모습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들었던 가장 달콤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바로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나는 내 필요에 의하여 살지 말아야 하며 가족에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병원에서 의논하고 있었을 때였다. 거기서 간호사가 작은 아기를 우리 방으로 가져왔을 때 그 순간만큼은 신성했고 그 방은 우리들만의 세상인 듯 느껴졌다.

   
▲ 보통의 혈우병 진단은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받게 된다. 태어나기 전에 혈우병이라고 생각하고 낳는 부모는 없다는 얘기다.

다음날, 나는 일하러 나갔다. 아들의 할례가 그날 아침에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일상적인 절차일뿐이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나는 아내에게 잘 진행되었는지 확인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간호사가 기저귀에 약간의 피가 남는다고 말했다. 여전히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고 할례를 통해 출혈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내가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소아과 의사가 우리를 찾았다. 처음 만남에서 우리는 그가 우리 아들을 수년간 돌봐줄 의사가 될 것임을 알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계속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아직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혈액 전문의에게 검사를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그만 출혈을 멈추고 집에 가기를 원했다. 아직도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들을 집에 데려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병원에 갔다. 진찰 후에는 세명 모두 병원을 떠나고 우리가 준비한 침대에서 곤히 자는 아기를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병원에 도착했다. 생각과는 달리 혈액학 분야의 전문 팀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은 우리 아들이 혈우병이라는 매우 드문 출혈 질환이 있다고 말했다. “혈우병?”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 바로 튀쳐나오는 질문이 나오고 말았다. “살 수 있나요?” 의사들은 그가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다행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대화의 순간, 내 가족의 삶을 영원히 바꿀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혈우병이 내 삶의 세계를 재정의 한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정기적인 토론을 통해 바늘, 출혈, 격려 등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혈우병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가족 구성원들만큼 가까운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 내 아들의 진단은 나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그와 혈우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조 맥도날드씨가 소개하는 혈우병 이야기

조 맥도날드는 출혈 장애가 있는 가족을 위해 동기를 부여해주는 강사이자 작가, 그리고 환자 대변자로 활동하고 있는 카잔드라 캠포스 맥도날드의 남편이며 그녀와 함께 할우 환우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중증 혈우병 항체 아들인 줄리안(21세), 케렙(11세)과 함게 뉴 맥시코의 리오 랜초에서 살고 있습니다. 

[헤모라이프 황정식 기자]

 

<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 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황정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등록번호 : 서울아02245  |  대표 : 박천욱  |  편집인 : 김태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성연
전화 : 02-535-6474  |  문의 및 제보 hemo@hemophilia.co.kr
Copyright © 2012 헤모필리아 라이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