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의료법은 의사들의 창의적인 치료법 개발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어요”

혈우병을 가진 조 모(30세 혈우병A타입, 중증)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식약처를 향한 날선 비판으로 운을 뗏다.

“우리나라는 식약처에서 허가해 주는 용법 용량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삭감이라는 무서운 칼로 의사들의 의욕적인 신기술 개발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혈우병환자가 사용하고 있는 치료제를 놓고, '보험급여 삭감논란'이 되고 있는 건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삭감’이라는 제도는 불필요한 보험급여 제정지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의료적 행위가 식약처의 허가기준에서 벗어난 경우 심사평가원 등에서 병원의 청구금액을 돌려주지 않는 제도이다.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서 병원으로부터 의료행위를 받게 되면 병원은 환자에게 본인부담만 받고 나머지 의료비를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청구를 해서 돌려받게 된다. 그러나 ‘삭감’ 결정을 받게 되면 병원은 의료비를 받을 수 없으며 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게 된다. 결국 고스란히 병원에서 손실이 발생하게 되며 병원은 더 이상 해당 환자에 대한 동등한 의료행위를 기피하게 된다.

‘삭감’이라는 제도를 올바르게 적용할 경우 약물 남용을 막을 수 있으며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들의 주장은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아닌 ‘재정 확보적 삭감’이라고 맞서고 있기에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조 모씨의 경우는 혈우병치료제에 대한 삭감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한(?) ‘진통제’ 한 알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조모 씨는 평소 혈우병성 통증으로 일반적인 활동에 많은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에 조 씨의 담당 주치의는 ‘암성통증(암 환자가 겪는 통증을 포괄적으로 뜻하는 말)’에 사용하도록 허가된 진통제를 조 씨에게 처방했다. 효과가 있었다. 오랫동안 큰 통증으로 시달리던 조 씨는 주치의로부터 처방받은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일상적인 활동을 다시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 알에 2만원 가량하는 이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기엔 개인적인 비용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담당 주치의는 보험급여를 청구하기로 마음먹고 비급여 부분을 급여청구했다. 얼마간 이렇게 처방한 진통제의 청구금액에 제법 높아지자, 심사평가원은 전액 삭감해 버렸다.

“혈우병 환자의 중증이상 통증에서 사용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보험급여를 처리해서 처방하게 되면 모조리 삭감되는 게 현실이에요.”

의료법에 보면 ‘국민의 안전한 치료를 위해 식약처의 고시를 따른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한 줄 때문에,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의료권’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식약처의 고시가, 상위법인 의료법을 지배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조 씨는 이같은 ‘진통제 사감’ 문제로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에 진정을 냈지만 결론은 ‘식약처의 고시대로 처방행한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진통제의 효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는데, 해당 진통제가 ‘혈우병환자에 대한 통증완화’라는 문구가 없기 때문에 삭감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자. 식약처에서는 왜 이 약을 ‘암성통증’에만 국한하여 사용하도록 했을까? 이 약품은 수입약품인데 사용설명서를 직역하면서 발생된 오류라고 조씨는 말했다. 조 씨는 “식약처는 ‘암성통증’에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약품이라고 주장했으나, 외국에서는 이 약품을 암성통증, 중증도 이상의 통증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라고 했다. 즉 혈우병과 같은 중증도 이상의 통증에도 사용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의료행위가 현존하는 제도 때문에 싸구려 불법 의료행위로 취급된 것이다. 아울러 이같은 의료행위자는 하루아침에 이른바 ‘돌팔이’가 된 것이다. 담당주치의는 외국의 여러 논문과 자문을 받아 소명절차를 밟고 있으나,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 등의 입장은 ‘단호하다’는 게 조씨를 분노케 했다.

이와 관련, 조 씨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우연하게 다른 적응증으로 혈우병을 완치시킬 수 있는 약품이 발견된다고 해도 ‘혈우병을 완치시킬 때 사용하는 약’으로 허가사항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멀쩡히 완치약을 개발해 놓고도 사용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승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