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자에게 심각한 출혈부위로는 인후(목구멍), 안와(눈 주위 뼈), 사지구획(사지가 구분되는 부분), 두개강(머리 안쪽), 척추강(척추 안쪽), 복강(배 안쪽) 등이 있습니다. 경부손상이나 구강 내 치과적 수술 후에 발생하는 안면 부종이나 혀 부종은 기도압박 및 폐쇄로 진행할 가능성이 큰 출혈징후입니다. 자주 발생하는 팔, 다리 근육의 출혈이라도 마비가 온다든지 반대편보다 창백하고 차가워지는 증상이 생길 경우에는 근막절개술이 필요합니다. 안구내 출혈 또한 응급상황에 해당됩니다.

전에 진료한 분 가운데 집에서 넘어진 후 머리가 심하게 아파 응급실로 내원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중증 혈우병 A 환자분이었는데, 섬에 거주하는 관계로 급히 응고인자를 주입하고 2시간이나 걸려 병원 응급실로 오셨습니다. 뇌 컴퓨터 단층촬영을 해보니 뇌출혈 소견이 보였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중환자실에서 두개강내 출혈이 흡수될 때까지 응고인자 보충요법을 하였고, 이후 장기간의 유지요법을 시행하였습니다.

관절질환이 혈우병 환자의 가장 흔한 합병증이라면, 두개강내 출혈은 혈우병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원인입니다. 혈우병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두개강내 출혈이 20~50배 많이 발생하며, 두개강내 출혈로 인한장기 후유증으로 경련이나 운동장애와 같은 질환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약 10,200명의 혈우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두개강내 출혈은 중증 혈우병환자에게서 2.7%로, 중등도 혈우병(1.3%)과 경증 혈우병(1%미만) 보다 현저하게 높은 발생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증 혈우병 환자라도 항체가 없고, 유지요법을 시행하는 경우 두개강내 출혈의 위험률은 눈에 띄게 감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지요법이 두개강내 출혈의 자연발생 위험도는 낮춘다고 하더라도 외상이후의 출혈은 여전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두부외상은 혈우병환자의 두개강내 출혈의 큰 원인으로, 연구결과 약 60%의 두개강내 출혈 환자가 두부외상의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전에 두개강내 출혈의 병력이 있는 경우에는 없는 경우에 비해 두개강내 출혈 위험도가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두개강내 출혈이 발생했을 때 보일 수 있는 증상으로는 대표적으로 두통, 구토, 갑작스런 의식소실, 한쪽 팔다리를 못 움직인다든지, 감각이 이상하다든지, 잘 보이지 않는 등의 국소 신경학적 이상소견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차에 치였다거나, 혹은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친 경우에는 가능한 빨리 기존에 맞고 있던 응고인자 용량의 2배를 주입한 뒤 병원에 내원하여 두개강내 출혈 및 다른 부위의 출혈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울러, 두개강내 출혈은 재출혈의 위험이 있어 장기간의 유지요법이 필요합니다.

전에 진료한 또 다른 환자분 가운데는 이틀 동안 지속된 복부통증으로 병원에 오신 중증 혈우병 A 환자분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유지요법을 성실하게 잘 해오셔서 그런지, 설사나 구토와 같은 별다른 이상 증상없이 복부통증과 복부팽만을 호소하였습니다. 복부 전산화단층촬영을 통해 알아본 결과 복강내 혈종이 관찰되었지만, 혈관조형술을 시행해보니 진행 중인 출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자분께서는 병원에 오기 이틀 전 책상모서리에 복부를 찧은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환자분은 혈종이 감소할 때까지 입원하여 응고인자 보충요법을 시행하였고, 이 후 장기간 유지요법을 시행하였습니다.

혈우병 환자의 경우 복강내 장기에 약간의 신체적 압력이 가해지더라도 출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부 외상이나 복통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외상의 경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응고인자 보충요법을 즉시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울러, 출혈 증상을 인지한 후 또는 외상 후에는 반드시 응고인자를 빨리 투여하는 것이 출혈을 막는 데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코헴 143호(2015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