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봉 칼럼니스트

혈우병 치료는 지난 몇 십년동안 아주 빠르게 개선되었다. 부족한 응고인자를 보충해 줄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고 국가 정책으로 혈우병 환자의 치료에 대한 지원으로 치료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이제 혈우병 환자는 주요한 출혈을 예방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응고인자 치료와 포괄적 진료로 1960년대까지 고작 11살에 불과했던 혈우병 환자의 평균수명은 빠르게 늘어나서 현재는 혈우병이 없는 사람들의 예상기대수명에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혈우병 환자의 평균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혈우병 환자의 대표적인 합병증인 혈우병성 관절염뿐만 아니라 고혈압, 당뇨 등 일반적인 만성질환도 갖고 있는 장년의 혈우병 환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파리 WFH 총회 <혈우병과 노화> 세션 중 '혈우병 환자의 고혈압 유병률'에서 미국인의 국민건강영양보고서를 바탕으로 동일 연령대의 혈우병 환자와 비혈우인의 고혈압 유병률을 비교한 결과 혈우병 환자에서 고혈압이 있는 환자가 월등히 많았고 상대적으로 치료는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내용이 발표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혈우병 환자의 관상동맥질환 치료에 대한 내용도 발표되었다.

이것은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혈우병 환자도 비혈우인에게서 주로 나타난다고 여겼던 질환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혈우병 환자의 치료가 혈액질환 전문의뿐만 아니라 관련된 다른 질환의 전문의와 연계된 치료가 시급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 환자가 모든 과를 찾아헤매야 하는 기존 치료모델(좌)와 포괄적 다학제 치료시스템(우)

혈우병 환자의 치료는 기본적으로 혈액(종양)내과에서 시작되어 관련 전문과의 유기적인 협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혈우병의 포괄적 치료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수년 전부터 포괄적 치료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을 요구하는 환자들의 외침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고 있는 듯하다.

지난 12월 13일에 국회에서 있었던 <혈우병 환자의 맞춤식 치료도입> 토론회에서도 세브란스병원 한정우 교수는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한 충분한 치료, 진료체계가 필요하다”고 하며 “혈우병 지정 병원이 있지만 지원이 없어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의료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의료 인프라가 혈우병 환자 치료에는 그림의 떡이 되지 않아야 하며, 혈우병 치료가 응고인자 투여 용량과 처방 횟수라는 관점에서 이제는 치료의 효율성으로 그 포커스가 이동해야 한다.

혈우병이 고가의 치료제만 사용하는 돈 먹는 질병이 아닌 잘 치료하고 관리하면 혈우병 환자도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포괄적 치료와 진료체계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실질적 조치가 하루 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 12월 13일 국회에서 열렸던 토론회의 패널들

[글 : 김대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