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3일 국회에서 처음으로 김승희 의원 주최의 혈우병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희귀질환인 혈우병의 치료가 보건당국의 재정중심적이고 획일화된 기준을 벗어나 환자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식 치료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다학제 진료체계와 보험급여 삭감 우려없는 적극적인 치료,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2월 13일 오전 국회도서관 지하 1층에서 열린 김승희 국회의원(자유한국당)과 한국코헴회 주최의 '혈우병 등 출혈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같은 의견이 오갔다.

▲ 많은 혈우환우와 코헴가족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간 혈우병 환우사회와 전문의료진 사이에 중요한 현안으로 논의되던 이러한 의제들이 처음 입법, 행정기관과 함께 공론화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특히 수년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2015년 말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초부터 시행되면서 세부 시행안까지 마련되고 있는 '희귀질환관리법'의 정착과 맥을 같이 하면서 혈우병 치료환경을 개선을 위한 이번 토론회는 더욱 의미있는 자리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승희 의원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자신이 식약처장 재임 당시에 혈우병 치료제 허가를 진행한 바 있어 혈우병 상황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고 인연을 전하며 원활한 토론회가 진행될 수 있도록 참가자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김 의원은 환영사에서 "현재 혈우병 환자의 응고인자 처방기준은 환자의 개인적인 특성이나 출혈정도와 무관하게 몸무게당 획일화된 용량을 처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혈우병 환자의 치료환경이 보다 활발히 논의 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이번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 토론회를 주최한 김승희 의원

이어 인사말을 전한 혈우병 환자단체 '한국코헴회'의 박정서 회장은 "혈우병으로 대표되는 출혈질환에 대해서는 1990년대부터 적극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과 임상의학경험이 축적되었고 현재에는 예방적 치료를 통해 혈우병 환우도 비혈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혈우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짚어보고 자원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연구, 활용해 환우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 이번 토론회가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번 토론회에는 주최자인 김승희 의원 외에도 전현희, 나경원, 김규환, 송희경, 강길부 의원 등 보건복지 분야에 관심이 깊은 국회의원들이 함께 자리해 축사를 전하고 혈우사회의 의견을 경청했다.

▲ 전현희 의원의 축사

▲ 나경원 의원의 축사

본격적인 토론회는 황태주 전 대한혈액학회 회장(현 한국혈우재단 이사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되었고, 코헴회 박정서 회장은 "획일적인 치료제 처방으로 인해 환자마다의 적절한 치료가 어렵고, 단순 처방을 위해 불필요한 내원이 반복되고 있어 오히려 환우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보험재정도 소모되고 있다"는 취지로 기조발제를 시작했다. 박 회장은 "혈우 치료의 뛰어난 발전상과 사회적 지원정책을 조금만 임상 의료현장의 시각을 반영해 손본다면 추가적 재정소모 없이도 혈우병 치료환경을 획기적으로 진일보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패널디스커션 중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박정서 회장(가운데)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의료진들은 대체적으로 환자단체의 이러한 주장을 구체화해 임상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의견을 제시했다.

경북의대 이건수 명예교수는 "십수년 전부터 이미 환자별 회복률검사 자료를 바탕으로 일부 환자에게는 획일적인 처방이 적절치 않음이 지적되었고 맞춤식 처방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평원에 의한 크고 작은 보험 불인정사례 때문에 병원들이 혈우병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며 의료계와 심평원의 공동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혈우재단 유기영 원장은 '혈우병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제언'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혈우병B(9인자 결핍) 환자에 대한 처방증대와 항체환자 면역관용법 필요성을 제기했다.

▲ 토론에 패널로 참여한 주희 환우(좌측부터), 한정우 교수, 유기영 원장, 이건수 교수

이어 혈우병 진료 및 수술 등에 대한 저수가 문제와 다학제진료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신촌세브란스 소아혈액종양과 한정우 교수였다.

한 교수는 "혈우병 환자는 다학제가 필요하고, 중증에 따라 고난이도 수술을 요하는 등 고위험·고난도 진료가 이뤄지지만 그에 따른 수가는 미비해 혈우병 환자를 진료해도 이에 소요되는 인력이나 기술, 재원에 대한 보상이 없어 의료진들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혈우병 환자는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소아혈액종양과 등 여러 과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에 따른 지원이 없어 다학제관리가 전혀 불가능하다"면서 보건당국이 혈우병 전문치료센터를 지원해 환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펼쳤다.

혈우병 환자의 어려움을 피력하기 위해 패널로 참석한 혈우병 항체환우 주희군(22세)은 "한번 내원하여 처방 받을 수 있는 약의 양이 3일분 밖에 되지 않아 수시로 병원에 가야만 한다"라면서 "가령 관절 또는 근육 출혈이 되어있는 상태로 그 먼 거리를 오직 약을 타기 위해 왕복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겹고 소모적인 일이었다"고 밝혀 원외처방 횟수를 늘려줄 것을 보건당국 관계자들에게 요구했다.

▲ 패널들의 발표를 경청하는 참가자들

이러한 환우사회와 의료계의 의견에 대해 정부측 참석자들은 일부분 공감과 반영계획이 추진중임을 표하면서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뜻을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규덕 진료심사평가위원장은 "이건수 교수의 주장은 예전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지금은 그렇게 삭감을 실시하지는 않는다"며 “단지 수술 등의 여러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고, 전문치료센터가 필요하다는 한 교수의 의견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 정부측 패널로 참석해 토론에 임하고 있는 이규덕 위원장(우측부터), 안윤진 과장, 곽명섭 과장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과 안윤진 과장도 "혈우병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병도 있지만 관리범주에 포함되지 못해서 고민하는 질환의 환자들도 있어 정부는 관리대상 정리 작업을 우선 진행중이다"라며 "올해부터 시행된 희귀질환관리법 안에 전문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혈우병도) 이에 포함시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은 "혈우병 환자 수가 부분은 중증환자 성격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심사제도는 심평원과 함께 최근 자체적인 논의를 진행 중에 있고 급여기준은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정책적인 외부 토론회와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나온 의견들을 전문위원회에 전달해 안건에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월 처방횟수 확대와 전연령 유지요법 적용에 대한 계획은 제약회사와의 협상 단계에 와있어 조만간 변경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 혈우병 치료제 고시변경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 혈우병 현안으로 처음 국회에서 개최된 토론회인 만큼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청중들의 질문과 자유발언까지 모두 진행한 좌장 황태주 이사장은 "오늘 자리는 결론을 내기 위한 것보다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한 좋은 정책제안을 하는 자리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혈우병 사회가 서로 협력하고 발전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로 이어지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하며 토론회를 마쳤다.

▲ 토론회 좌장을 맡은 황태주 한국혈우재단 이사장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혈우환우는 "지금껏 각자 논의는 활발했지만 이렇게 관계자가 한곳에 다 모여서 얘기 나눈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고무적이다"라고 소감을 전했고, 다른 한 환우가족은 "정부 관계자분들도 어려운 자리였을텐데 성실하게 임하고 TV에서만 보던 의원들도 많이 관심가진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 패널과 내외빈 기념촬영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