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로 ‘만렙’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 찰 만(滿)과 영어 레벨(Level)의 합성어로 온라인게임의 캐릭터나 아이템, 스킬 등이 최대 레벨 최대치로 성장한 것을 두고 말하는 거다. 여기에 ‘환자’를 결합해서 ‘만렙환자’라는 농담 섞인 말이 있다. 예전엔 군기가 빡세다는 육해공군 특수병 조차 간부들도 통제하기 힘들다는 ‘병장 말호봉 계급’. 이런 말들은 모두 수 십 년차 만성질환자들을 비아냥하는 말들이다.

혈우사회에서도 가끔 특정 일부 환자들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소위 유명인사라 불리는 만렙 혈우환우... 마치 자신이 득도하고 열반에 오른 것처럼 착각하면서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로 말 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도 역시 환자일 뿐이다. 우리 혈우사회가 좀 더 성숙하려면 이런 이들이 먼저 스스로를 낮춰야한다. 혈우병을 반평생 연구하면서 저명인사가 된 별우병 전문의사 조차 혈우병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하물며 환자들이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방정맞은 행태이다.

올바른 자세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조언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문자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도 있더라’ 정도의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것이다’라는 단정적 표현을 환자들이 사용하는 건 자신의 위치를 벗어난 행동이라 생각된다. 특히 혈우사회에 갓 입성한 신환자 또는 신환자가족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마치 신생아처럼 모든 썰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신환자들에게는 잘못된 정보나 편향적 판단은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신환자들도 이를테면 ‘만렙환자’들의 이야기만 편식해서는 안 될 것이고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의료적 상식을 얻어야 한다.

국내 혈우사회는 이같은 올바른 의료적 정보를 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혈우재단의 ‘혈우병세미나’, 신촌세브란스병원의 ‘혈우병 환우와 가족을 위한 건강강좌’, 대전 을지대병원의 ‘혈우병 건강워크숍 세미나’, 인하대병원의 ‘혈우병 집담회’ 등이 있다. 국제 혈우사회는 WFH(세계혈우연맹학술대회), ISTH(세계혈전지혈학회) 등 크고 작은 형태의 공식적인 혈우병 의료정보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센터장 유철주 교수)에서 열리고 있는 ‘혈우병 환우와 가족을 위한 건강강좌’ 장면

이런 것들이 공신력 있고 정확하게 혈우병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또한 환우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면 여러 환자들의 경험담을 듣는 게 좋다. 환자마다 특성이 있고 경험했던 치료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한 몇몇 환자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맹신하는 건 자칫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국내혈우사회에서의 환자경험담을 공신력 있게 나누는 창구는 한국코헴회이며 소속된 전국의 8개 지회이다. 한국코헴회는 전국 8개의 지회를 두고 환자 자치회를 꾸려가고 있다.

8개 지회는 서울·경기(지회장 김영기, 제주포함) 강원(지회장 길명배) 충북(지회장 차민준) 충남(지회장 박한진) 경북(지회장 장원) 경남(지회장 표재근) 전북(지회장 이철권) 전남(지회장 장영진) 지회로, 각 지회는 지회장과 대의원 그리고 지회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기모임을 통해 공식적인 혈우병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나아가 환우의 응급 상황시 적절한 대응을 위해 코헴회 홈페이지 내에 각 지회임원들의 연락처를 공개해 놓고 있다.

▲한국코헴회(회장 박정서) 지회 조직도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정확한 정보가 있다는 걸 놓치지 말아야겠다. 일반적인 사교 친목 모임에선 구성원들의 갈등 때문에 해당 모임과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혈우사회에서는 ‘구성원’보다는 코헴회 지회 등을 통한 ‘올바른 정보 숙지’를 위해 모임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 혈우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모임을 몇 차례 놓치는 사이에, 환우들 간 정보의 차이가 급격하게 발생하면서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 되더라’라고 등한시 할게 아니라 그 안에 작은 업데이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다 현명한 방법이겠다. 이것이 향후 남들로부터 ‘만렙환자’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