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치료제, 즉 응고인자제제를 처방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 '사실'이다. 약값도 비싸고 생물학적 제제로서 관리도 까다롭고, 혈우병을 경험해 본 의료진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 보면 우리 혈우사회가 '혈우병 약 처방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 나머지 스스로 울타리 안에 가두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번 사례가 그 각성을 촉진했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성소병원'에서 13일부터 혈우병 8인자 치료제인 애드베이트를 처음으로 처방하기 시작했다. 혈우사회 내 표현으로 '약을 넣기' 시작했다.

▲ 안동 성소병원 위치. 울진,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의성, 청송, 영덕에 인접

그 과정에서 원무과와 의료진을 연결하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마침내 아들을 위한 치료제 처방의 기틀을 마련한 환우 아버지가 있어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환우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서 효율적으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고, 지역별 거점병원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이 시작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 안동에 살고 있는 기석이 아빠 신상환입니다. 아내와 첫째 소현이 그리고 둘째 기석이 막내 의현이 이렇게 다섯명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 코헴 부모워크샵에서 아빠의 자가주사 성공!

2. 성소병원에서의 약품처방은 어떻게 이루어질 예정인가요?

11월 13일부터 샤이어사의 애드베이트가 처방됩니다. 성소병원 소아청소년과의 이상수 과장님께서 기석이의 진료를 담당하게 됩니다.

3. 약이 처방되기까지의 경과를 들려주시겠어요?

이건수 교수님께서 경북대병원에 재직중이실 때 안동에서 혈액응고제재를 처방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셨음에도 비용문제 (재고 발생시 병원측이 떠안게 되는 금전적 부담) 때문에 성사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저희 부부는 항상 ‘안동에서는 약을 탈 수 없다’ 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게 7년을 경대병원과 서울의 재단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왔는데 지난달(10월) 어느날 문득 안동에서는 왜 약을 처방받을 수 없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한번 부딪쳐 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천천히 일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동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민들의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기초의원이 누구인지를 알아봤습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안동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려했는데 그런분은 없더라고요. 그냥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맨땅에 헤딩’식으로 부딪쳐본 거였죠. 그러다가 성소병원 원무팀에 근무하는 같이 운동하는 형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형님께 전화로 우리 사정을 이야기 했고 그 형님이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형님은 기존에 왜 약이 들어올 수 없었는지 파악해줬고, 확인결과 약이 들어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진료의뢰센터 팀장님과 저를 연결시켜주셨는데, 진료의뢰센터에서 기존 진료받던 경북대병원 김지윤 교수님의 진단서와 소견서, 그리고 처방전을 요구했고 그 서류를 가지고 이 병원 이상수 과장님을 만나자고 얘기했습니다. 그대로 진행해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 의리의 삼남매

4. 인근 병원에 약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

아내가 내년 상반기쯤에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기석이 약을 타는게 제일 걱정이라고 자주 이야기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내가 버스를 타고 대구에 가서 약을 타 왔거든요. 그런데 취직을 하게 되면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함께 고민하다가 안동에서는 약을 탈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 보기로 했습니다.


5.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사실 크게 어려웠던 부분은 없습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별다른 저항없이 약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궂이 어려웠던 부분을 꼽으라면 병원을 옮기게 되어 그동안 우리 기석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경대병원 김지윤교수님을 향한 죄송한 마음이 심리적 어려움이었습니다.

6. 성소병원과 지역 환우들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으시면?

저에게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마는 제 짧은 생각으로는 성소병원에 애드베이트가 들어오게 되면서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 영주 봉화 청송 영양 등지에 있는 소도시에 사시는 환우분들이 조금더 편리하게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앞으로 병원 의료진과 신뢰관계를 잘 형성하여 에드베이트 뿐 아니라 다른 약이 필요한 환우들도 안동에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7. 한국 혈우사회에 바라는 점은?

먼저 박정서 회장님과 함께 여러 임직원분들이 우리 환우와 가족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계신줄은 잘 알고 있고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제1회 부모워크샵에서 좋은 혈액응고제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는 아주 기분좋은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반감기가 더 길어지는 응고제가 나오게 될거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환우들이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몸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환우들의 반복되는 출혈을 최소화할수 있는 쪽으로 좋은 프로그램이나 교육 및 지원도 확대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8. 주말이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시나요?

주말에는 아이들과 공원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또 수영장에 같이 가서 수영을 합니다. 제가 수영을 정말 좋아해서 아이들에게도 수영을 가르치고 있는데 기석이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쭉 수영을 해 오고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만화카페같은데 가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 안쓰러우면서도 너무 귀여운 아이들

9. 환우 아버지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아버지의 과묵하고 표현서툰 사랑을 뒤늦게 알게되어서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 때 그리고 저의 학창시절의 아버지는 저에게 두려운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미워한적도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하거나 시간을 함께 보낸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족함을 질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오래 남았었습니다. 제 아내가 저에게 자주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금방 지나간다, 이런 시간이 오랠줄 아느냐, 지금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없을거라고요. 아이들이 품안에 있을 때 눈마주치고 대화하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놀아주고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랐을 때 아빠와의 좋은 기억이 마음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자기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저뿐 아니라 이 글을 읽고계신 모든 아버지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기석이, 동생, 기석이 엄마

인터뷰에 응해주신 기석이 아버님께 감사드린다. 취재하면서 '아이들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더라'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잘생긴 기석이네 가족을 응원하며, 혈우가족들의 힘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혈우사회를 그려본다. 지금 그렇게 되고 있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