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측, '헴리브라 예방 중이어서 팩터 투여 필요없다 판단'
- 전문의들, 적극적 지혈 위해 응고인자 병용 필요에 무게
- 비응고인자 예방 중 수술,출혈에 대한 한국형 가이드라인 절실

중증 혈우병 A 환자인 이명섭씨는 지난 8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발목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으며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

이 당황스런 경험이란 '응고인자제제 투여 없이' 수술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혈우병은 알려진 바와 같이 혈액 내 특정 응고인자(혈우병 A는 8번 응고인자, 혈우병 B는 9번 응고인자)가 결핍되어 출혈시 지혈이 늦고, 혈우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응고인자 활성도 1% 미만의 중증 혈우병일 경우 외상 없이 자연적 출혈을 겪기도 하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혈우병 환자의 외과적 수술시에는 부족한 체내 응고인자를 보충하기 위해 반드시 수술 전 해당 응고인자 농축제제를 정맥투여한 후 수술대에 오른다. 특히 인공관절 치환술처럼 절개부위가 크고 내부 출혈도 불가피한 수술의 경우 평소 투여량의 두 배 가량 제제를 투여해 응고인자 활성도를 100% 가까이 올린 뒤 수술을 시행하는 게 교과서적 치료이다. 또한 수술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응고인자를 투여해 출혈과 그에 따른 염증을 막고 빠른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명섭씨의 담당 의사들은 수술 전후 그에게 응고인자제제를 투여하지 않았다. 이 병원은 혈우병 환자에 대한 정형외과 수술을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해 온 병원이고 의사들도 혈우환자 수술에 베테랑들이다. 명섭씨 또한 관절 수술을 수 차례 경험했던 터라 자신의 상태와 응고인자제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환자였다.

수술에 응고인자제제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원측 설명은 '환자가 비응고인자제제(헴리브라) 예방요법을 평소 사용하고 있어 굳이 응고인자를 추가 투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즉, 헴리브라 예방요법(명섭씨의 경우 2주 1회 피하투여) 만으로도 수술 시 예상되는 출혈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혈우병 치료에는 1970년대부터 응고인자 보충요법이 표준치료로 자리잡아 왔는데, 최근들어 응고인자 보충이 아닌 여타 응고기전을 활용한 제제들이 개발되면서 2018년 선진국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혈우병 A 최초의 비응고인자제제 헴리브라가 2023년 우리나라에도 확대 사용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어려우나 1,800여 명의 등록 혈우병 A 환자 중 현재 100여 명이 헴리브라 예방요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헴리브라 예방요법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수술시에는 응고인자제제를 추가 투여해 체내 응고인자 수치를 높여 더 안전하게 지혈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국내 '혈우병 치료 1세대'로 손꼽히며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네이처요양병원 혈우병센터 최용묵 교수는 "헴리브라 예방을 하면 8인자 활성도로 환산했을 때 15~25% 정도 활성도에 준하는 지혈 효과가 있으며 중증 출혈이 발생하거나 메이저 수술을 할 때엔 응고인자를 기존 기준에 따라 추가로 써야 한다"고 밝혔다. 헴리브라 개발과 임상시험의 중심에 있었던 일본 나라의과대학 미도리 시마 교수도 지난해 본지와 가졌던 단독 인터뷰(링크 연결)에서 최 교수와 같은 답변을 한 바 있으며, 일본에는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 네이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혈우환자 이명섭(우)씨와 하석찬 기자. 사진은 앞선 2월 무릎 수술을 받았을 당시.

명섭씨는 병원이 수술 시 응고인자 투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아하고 당황스러웠다는 심경을 전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수술은 잘 되었지만 병원이 헴리브라 예방하면서 나오는 혈액검사 수치를 면밀히 살폈는지 걱정됐었고, 더 안전하게 팩터를 투여하면서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담당의에게 "혹시 모르니 출혈이 심하면 전에 쓰던 '진타'(8번 응고인자제제)를 맞게 준비해달라"고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명섭씨는 수술 후 해당 병원 입원실에서도 응고인자가 처방되지 않아 예정보다 이르게 일주일만에 퇴원을 하고 네이처요양병원으로 옮겨 약 3주간 입원,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았다. 헴리브라 예방은 기존 일정에 맞춰 투여를 이어갔고, 재활 초기에 응고인자제제도 추가 투여를 하면서 8인자 활성수치를 높이는 방식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재활은 순조로웠고 9월 26일 기자가 만났을 땐 가볍게 목발을 짚으며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정도였다.

글로벌 헴리브라 임상시험 과정에서 응고인자 투여 없이 크고 작은 수술을 수행한 결과가 보고된 바 있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이에 대한 연장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치과 임플란트나 인공관절 치환술, 개복 수술 등의 메이저 수술에 있어서는 반드시 추가 응고인자 투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상식이고 그에 따른 국제 가이드라인도 갖춰져 있다.

아마도 이번 케이스는 혈우병 치료가 본격화된 이후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가 응고인자 투여 없이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다행히 명섭씨의 수술과 재활은 건강하게 마무리되고 있지만, 국내 혈우사회 구성원들이 비응고인자와 응고인자제제의 역할에 대해 더 신중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고민과 함께,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더 폭넓게 자료와 의견을 수렴해야 함을 곱씹게 만든다.

아울러, 앞으로도 다양한 기전의 혈우병 치료제들이 속속 한국에 상륙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응고인자 예방과 응고인자 병용에 대한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해 보이며, 현재 'A 쓰다 안들으면 B, B 쓰다 출혈 심하면 다시 A' 식의 보험급여 기준도 의료현장의 실제와 글로벌 가이드에 맞춰 전향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