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근 주필

희귀 질환 환우들이 치료받기 위한 비용 부담은 오랫동안 사회적, 경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어 왔다. 치료제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은 매년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약가 통제와 규제 강화 요구도 늘고 있다. 물론 고가의 치료제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환우와 그 가족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이 지나치게 비용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우리는 더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게 된다. 그 문제는 바로 환우의 삶, 그들이 겪는 고통,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이다. 필자는 치료제 가격 논쟁을 넘어, 희귀 질환 환우들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떠한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펼쳐보고자 한다.

치료제의 가치는 비용 그 이상이다

우선, 치료제의 가격 논란은 그 가치를 단순한 경제적 수치로 환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희귀 질환 치료제의 가치는 그 이상의 문제다. 희귀 질환 환우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질병의 특성상 치료제는 단순히 병을 완화시키거나 생명을 연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환우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환우의 삶의 질 향상, 나아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치료제의 진정한 가치다.

치료제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결국 환우의 삶을 비용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한다면, 희귀 질환 환우들은 치료받을 권리를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희귀 질환 환우들에게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치료제가 제공하는 가치는 환우의 존엄성과 직결된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책임과 포용

희귀 질환 환우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간주한다. 희귀 질환 환우들도 그와 같은 보호와 포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희귀 질환 환우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으며,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통은 보통 사회의 주류 논의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희귀 질환 자체가 발병 빈도가 낮아 사회적 관심을 덜 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보다는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희귀 질환 환우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경제적 지원을 넘어서는,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원하려는 적극적인 포용의 자세다.

사회는 희귀 질환 환우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의료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회적 참여를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그들의 신체적 건강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정신적 안정과 사회적 소속감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적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고용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환우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포용의 의미다.

환우들의 책임과 자기반성

희귀 질환 환우들이 치료를 받는 것은 권리이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의무도 있다. 사회는 높은 비용을 감당하며 희귀 질환 환우들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환우들도 이러한 지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선, 고가의 치료제를 사용하는 환우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지원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세이다. 만약 환우들이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회적 요구나 자원이 소외되는 상황을 간과한다면 이는 새로운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치료를 받을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과도한 특권처럼 비춰질 때, 사회적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사회의 지원은 환우 개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조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희귀 질환 환우들은 자신의 건강 관리를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치료는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치료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건강 회복이 어렵다. 이를 통해 환우들은 단순히 치료받는 존재를 넘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며, 이는 사회 복귀와 역할 감당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환우들은 치료를 통해 회복된 후 사회에 복귀해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고 기여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그들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한 만큼,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시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환우들은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이 받은 지원을 바탕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환우들이 사회적 참여와 기여를 통해 자신만의 역할을 감당할 때, 사회는 더욱 건강하고 균형 잡힌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비용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다움이다

희귀 질환 환우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치료제 가격 인하가 아니다. 물론 약가가 환우와 그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비용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환우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회는 환우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료제의 가격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치료제가 환우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환우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질 개선이다.

우리가 환우들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때, 그들은 '치료비 부담자'라는 수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환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가족이자 친구, 동료이며, 사회의 일원이다. 그들의 삶이 치료를 통해 개선된다면, 이는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우가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 다시 참여할 수 있을 때, 그들은 그동안의 고통과 절망을 딛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삶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

물론, 희귀 질환 치료제의 고가 문제는 분명 중요한 논의다. 그러나 그 논의는 환우의 삶과 존엄성을 희생시키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비용만을 문제 삼기보다는, 환우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과 포용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논리를 넘어서는 문제이며, 우리의 사회가 얼마나 포용적이고 인간 중심적인지에 대한 시험대가 된다. 또한, 환우들 역시 자신이 받는 지원에 감사하며, 자신을 돌보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희귀 질환 환우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

▲ 환우회 여름캠프에 참여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혈우병 환아들에게 어떤 미래를 안겨줄지는 현 세대들의 몫이 아닐까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