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우와 가족들에게 ‘반감기(half-life)’라는 용어는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반감기는 약물이 체내에서 절반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며, 이는 치료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인 ‘트로프 레벨(trough levels)’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트로프 레벨은 혈우병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치료제의 효과가 오래 지속되어 안전한 활동이 가능해진다.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 트로프 레벨이란 무엇인가?

트로프 레벨은 치료제의 혈중 농도가 가장 낮아지는 시점의 혈액 내 약물 농도를 뜻한다. 간단히 말해, 다음 주사나 치료를 받기 직전, 즉 혈액 속에 치료제가 가장 적게 남아 있는 시점의 농도가 바로 트로프 레벨이다. 이 수치가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환우가 출혈 없이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혈우병 환우의 예방요법은 치료제를 일정 간격으로 투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제를 투여한 뒤 시간이 지나면, 혈액 내 치료제 농도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트로프 레벨이 높으면, 다음 투여 시점이 오기 전에라도 일정한 보호 수준이 유지되므로 갑작스러운 출혈 위험이 줄어든다. 반면 트로프 레벨이 낮으면, 치료제를 주기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중간에 출혈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예방요법을 하고 있는 환우들이 주사를 맞아야 하는 시점에서 최저 응고인자 활성도의 예상 수치를 트로프 레벨이라고 하며 이 수치가 높을수록 환우의 일상생활이 더욱 안전하다.

◇ 트로프 레벨이 중요한 이유

이처럼 혈우병 환우들은 출혈을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치료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치료제의 효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게 된다. 반감기는 이 감소 과정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지표지만, 단순히 반감기만으로는 치료제의 보호 효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트로프 레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로프 레벨이 낮으면 예상치 못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활동적인 환우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신체 활동이 많기 때문에 트로프 레벨이 낮을 때 출혈을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 환우가 치료제를 투여한 뒤 응고인자 활성도(약효과)가 절반(50%)씩 떨어지는 시간을 반감기라 한다

◇ 트로프 레벨과 치료제 선택

혈우병 치료제를 선택할 때, 트로프 레벨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는 환우에게 더 긴 시간 동안 안전한 보호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환우와 의료진 모두 반감기뿐만 아니라 트로프 레벨을 기준으로 치료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를 사용하면, 주사 후에도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혈액 응고인자 수치를 유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출혈의 위험이 줄어들고, 일상적인 활동에서 더 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주기적인 치료제를 사용하더라도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의 연장이 중요한 환우들에게는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가 매우 유리하다.

◇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혈우병 환우에게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출혈을 예방하는 것을 넘어,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신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면 언제든지 출혈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로프 레벨이 높을수록 다음 치료제 주사 시점까지도 안정적인 보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를 선택하면, 환우들은 일상생활에서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뛰어놀 때에도 부모가 안심할 수 있다. 성인 환우들도 직장에서 장시간 활동하거나 여행을 할 때에도 출혈 걱정 없이 일상을 즐길 수 있다.

◇ 트로프 레벨을 고려한 신중한 선택

정리하자면, 혈우병 치료에서 반감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트로프 레벨이다.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하는 치료제는 환우들에게 더 큰 안정성과 보호를 제공한다. 따라서, 치료제를 선택할 때는 단순히 반감기만을 고려하지 말고, 트로프 레벨도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고 의료진과 함께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혈우병 환우들의 안전하고 활동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