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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톡톡> 해외의료보험으로 혈우병 치료하기김현준 환우 "캐나다와 맨몸으로 부딛혔다"
김태일 하석찬 기자  |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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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5  0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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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나갈 때 약은 어떻게 해?" 라는 질문에 흔한 답은 "모아서"였다. 그런데 해외 취업시에 현지 의료보험으로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받고 건강하게 활동하고 돌아온 환우가 있어서 인터뷰했다. 지역마다 보험제도가 다르고 치료환경도 제각각이어서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해외에 나갈 일이 점차 잦아지는 우리 환우들에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길 바라면서 김현준 환우와의 대화를 싣는다.

▲ 김현준씨(35)

김기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태백에 살고 있는 김현준입니다. 지금은 발목 수술하고 코헴의집에 머물면서 재활치료 하고 있어요.

김기자: 외국어느지역에서 머무셨나요. 기간은 얼마나?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머물렀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년 정도 머물렀어요.

김기자: 캐나다는 날씨가 어때요?
한국이랑 비슷하게 사계절은 있는데 여름이 굉장히 짧고 겨울이 굉장히 길어요.

김기자: 겨울에서 많이 추워요?
어마어마하게 춥죠. 영하30도까지 떨어지는데 금방 적응은 되죠. 밖에 나갈 일이 크게 없으니까. 다 차로 다니고 하니까요.

▲ 오타와의 겨울. 춥고 깁니다. 시청앞에서

김기자: 어떤 계기로 나가게 되었나요?
20대 중반에 캐나다로 건너가 영주권을 따고 저희와 같은 일을 하는 와이프 친구를 통해서 와이프가 먼저 오퍼(취업승인)를 받았어요. 부부인데 혼자는 힘들고 같이 가면 안 되겠냐고 그 업체 오너에게 물어보니까 저는 일단 캐나다 와서 면접을 보고 그때 결정을 하자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갔는데 그쪽에서 저를 거절을 해도 와이프가 오퍼를 받았기 때문에 저도 배우자 비자를 받아 취업활동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일단 갔죠. 근데 잘돼서 와이프랑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됐죠.

김기자: 결혼을 일찍 하셨나봐요?
서른살에 했어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일찍했죠.

김기자: 아내분이 받은 비자 종류는 어떤 건가요?
캐나다에서 표현하는 명칭으로 ‘워크퍼밋’(Work Permit) 이었어요.

김기자: 비자 기간이 정해져있는 건가요?
워크퍼밋은 1년에서 3년이라고 법으로 정해져있는데, 신청서를 내면 이민국에서 기간을 결정해줘요. 회사 오너가 3년 정도 괜찮겠다고 의견서 낼 수 있는데, 이민국에서 이 사람은 뭔가 우리 국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1년만 주고 괜찮게 판단하면 3년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와이프는 3년짜리가 나왔어요.

김기자: 그럼 부부여서 똑같이 3년짜리 비자를 받았나요?
네 저도 3년짜리 배우자 비자를 받았죠.

김기자: 그게 계속 연장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
연장이 5년인가 6년까지 될거에요. 한번 연장해서 5~6년 사이에 영주권 취득을 하지 못하면 6년 뒤에는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죠.

김기자: 영주권을 취득하는 게 까다로운가요?
금액적인 면을 따지면 서류 낼 때 인지비용 30만원에서 50만원 들어가고 변호사비용 포함해서 5천불에서 만불 정도 들어가요. 그리고 회사에서 이 사람을 영구히 고용할 의사가 있고 고용주의 확실한 스폰이 있어야해요. 겪어보면 혈우병 진단을 받고 약을 받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에요. 워낙 의료보험제도가 잘 돼있어서요. 근데 문제는 비자를 취득하는 과정까지 상당히 난코스가 많죠.

김기자: 워크퍼밋을 받는 과정까지는 혈우병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제약이 있거나...
아뇨 없어요.

김기자: 병을 고지해야하는 의무는 없어요?
서류상에 읽어보면 그런 항목이 있어요. 국내에서 내가 앓았던 질환이나 먹고 있는 약이 있습니까? 라는 항목이 있긴 해요. 근데 모른다고 체크를 해도 캐나다 들어가서 받는 신체검사 항목이 전염성 결핵 같은 5~6가지 항목이어서 혈우병 때문에 못들어가진 않는 것 같았어요.

김기자: 만약에 혈우병인 걸 밝혔으면 어땠을까요?
혈우병인걸 밝혀도 될 확률이 있는 게 자기가 암이라고 밝힌 사람도 된 경우가 있거든요. 그 사람은 가슴에 카테터(중심정맥 삽입관)를 심어서 할 수 없이 말을 했다고 하는데, 다리가 한쪽 없어서 캐나다 내에서 보험처리를 해서 의족을 달아야하는 경우도 통과되는 걸 많이 봤어요. 혈우병은 치료제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도 없고 의료보험제도가 좋아서 밝혀도 관계없을 거라고 봐요.

김기자: 건강한 편이시죠?
지금 오른쪽 발목이 문제가 되기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주사를 맞을 정도였으니까 건강한 편이죠. 9인자 중증인데 잘 다치지 않더라고요. 자연출혈이 없었어요. (김기자: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운동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었어요. 어렸을 때 의사선생님이 운동을 많이 하면 덜 다친다는 말을 많이 듣고 단순한 동기였는데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었어요.

김기자: 출국 전에 약은 어떻게 준비 하셨나요?
일 년 정도 준비를 했었던 것 같아요. 입국심사에 걸릴까봐 소량만 낱개포장을 해서 가져갔고 나머진 캐나다에서 아파트를 구하고 난 다음에 택배로 받았었죠.

김기자: 가기 전에 현지에서 약을 처방받는 계획을 어떻게 세우셨나요?
재단이나 코헴회에 여쭤보니 그런 선례가 없어서 어떻게 해줄 수 있다는 말씀이 없다고. 대신에 몬트리올에 있는 협회의 이메일 주소랑 거점병원별로 혈우병 전담 간호사들 전화번호 정도를 인쇄해서 주시더라고요.

김기자: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알아보신 거군요?
가서 일단은 비자를 받고 나서 의료보험가입은 간단해요. 의료보험은 각 주에서 운영하고 주마다 방식이 달라요. 한국보다 좀 더 엄격한 국민의료보험인데, 내가 수입이 없어도 되고 수입이 있으면 돈 내면 되고 무조건 단 한명의 탈락자도 없이 의료보험에 들어가야 되거든요. 학생비자도 가능하고 관광 비자를 제외한 모든 비자가 의료보험에 무료로 가입이 돼요. 의료보험까지 발급받고 나면 혈우병 진단을 받고 약을 타야 되는데 그 과정을 잘 모르잖아요. 몬트리올에 있는 세계혈우연맹 대표 이메일에 제 개인 신상을 먼저 적고 캐나다에서 발급받은 주민번호 적고 거주지랑 전화번호 적고 이름 적고 자동차면허 다 적고 그 다음에 사연을 적었죠. 내가 이러저러해서 한국에서 왔는데. 혈우병 환자다. 약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희 나라에서 혈우병 약을 받아야 되고 너희 나라에서 발급받은 의료보험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도와 달라고 하니깐 며칠 내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이 몬트리올 담당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몬트리올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제가 살고 있는 오타와 지역의 대형병원 혈우병 담당 간호사가 전화한 거더라고요. 자기가 몬트리올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자기가 도움을 줄테니 일단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약속을 잡아서 병원에 가니깐 그때부터 그 간호사가 모든 과정을 진행해 주더라고요. 병원에 환자 등록도 하고 혈우병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되니까 검사도. 아마 대도시면 그런 혈우병센터가 하나씩 다 있는 걸로 들었어요.

▲ 오타와의 여름

김기자: 진료과정은 어땠나요?
그 병원에서 혈우병 진단받는데 하루 걸렸던 거 같아요. 피검사 하고 x-ray찍고... 한국에는 혈우병만 보는 과가 없잖아요? 거기엔 혈우병만 전담하는 과가 있더라고요. 재단처럼 거기가면 전부다 혈우병 환자인거에요. 월~금요일 항상 진료가 있는데 병원 전체가 오후 4시면 문을 닫아요. 그렇게 해서 진단을 받고 집에 갈 때 약을 주는데 ‘베네픽스’(9인자 치료제) 3천IU 짜리를 60바이알 주더라고요. (다들 놀람) 그렇게 주고 간호사가 설명하기로는 예방을 일주일에 두 번 하는데 너가 몸이 아프거나 출혈이 있으면 6천 내지 9천IU를 맞아라. 주사일지 쓰는 건 없고요. 그렇게 해서 한 달이건 보름이건 아니면 예방만해서 6개월 쓰건 다 쓰기 직전에 미리 얘기를 하면 약을 준비해주는데 약만 보관하는 보관소가 따로 있더라고요. 거기다 맡겨 놓을 테니까 나중에 니가 퇴근 후에 와서 이름만 대고 찾아가면 된다. (김기자: 진료를 따로 보지 않고?) 네. 진료는 따로 보지 않고. 혈우병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해준다하는걸 느꼈어요. 한국에선 약을 타려면 과정이 많이 복잡하잖아요. 대면진료을 해야 하고 주사일지 제출해야 하고.

김기자: 그 병원은 오타와에서 제일 큰 병원인가요?
네. 다른 도시도 비슷할 것 같아요. 오타와가 큰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오타와는 캐나다에선 행정수도지만 규모는 중소도시나 소도시에 가깝거든요.

김기자: 혈우병을 전담하는 과가 월~금요일 내내 진료가 있고, 일상적인 처방용량은 아까 말한대로 충분하게 주는군요?
3천IU 60바이알 이었으니까... 예방을 한국의 출혈용량만큼 하면서 한 6개월치 넘는다고 볼 수 있겠네요. 캐나다 머무는 2년 동안 서너번 그렇게 약을 받아왔어요. 진료 보려면 4시 전에 가야하는데 제 퇴근 시간이 4시 반 넘어서 그냥 2~3일 전에 메일만 보내놓고 준비해놨다는 답장이 오면 저녁에 언제든지 24시간 오픈이거든요. 그래서 편한 시간에 가서 신분 확인하고 약을 받아왔어요.

김기자: 다른 환자들도 그렇게 받았나요?
제가 다른 환자들을 알고 지내질 못해서... 저만 특별이 많이 주지는 않았겠죠. 약값은 의료보험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나오지 않았고요.

김기자: 베네픽스 말고 다른 약도 있던가요?
약 종류는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았어요. 최근 기사 나오는 ‘알프로릭스’, ‘아이델비온’은 당시 몬트리올에선 처방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2013년도 막 이럴 때니까... 그래서 간호사 말이, 너가 몬트리올 가면 처방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작은 도시라서 그 약까진 안 들어와 있다고 했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작은 도시들도 아마 그 약이 들어올 거라고 하던데 그러기 전에 저는 귀국을 했으니까 써보진 못했죠.

하기자: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혈우병치료 하는데 있어서
혈우병에 관해 불편한건 전혀 없었죠. 일단 약을 부족함 없이 사용했으니까, 이걸 내가 계산을 해가며 쪼개 맞을 필요가 없었고 조금 출혈이 있으면 6천IU 맞고 하니까 문제없이 활동할 수 있었죠. 그러다 약만 받는 게 아니라 진료나 물리치료가 필요하면 혈우병 전문의사가 일주일 내내 상주하고 있으니까 예약을 하고 가면 됐어요.

▲ 상당히 건강해 보이는 현준씨

김기자: 현지 환우들과 단체활동은 안했나요?
오라고는 했는데 못갔어요. 한 달에 두 세 번은 오타와 지역 내 환자모임에서 문자나 메일이 와요. 컨퍼런스라든가 모임이 있다. 그런데 외국이고 하니깐 낯설어서 저는 참석을 안했는데 그런 모임은 자주 있었었어요.

김기자: 응급상황은 없었어요? 갑자기 출혈 됐다든가.
응급상황이 될뻔한 적은 있었는데 다행이 없었어요. 스노우보드 같은 걸 좋아해서 겨울에도 많이 탔는데 위험한 적은 많았는데 다행히 큰 사고는 없어서... 거긴 겨울스포츠 천국이에요. 슬로프도 자연설로 만들어지는 데니까요.

김기자: 캐나다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인데, 치과기공사 일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치과에 가서 진료 보고 나서 씌우는 보철물을 만드는 일이에요. 금이빨이라든가 임플란트 같은 걸 만들죠.

김기자: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일인가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왜냐하면 책상에 앉아서 손으로만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작업하면서 페달도 밟아야하고 여기저기 다른 테이블을 경유해 써야 하는 일이 많아서 동선이 꽤 복잡하죠. 캐나다에선 8시 반부터 4시 반까지 일했어요.

김기자: 야근 같은 건 없어요?
캐나다는 없죠. 야근을 하면 야근수당을 줘야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인식이 야근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문화차이인거죠. 예를 들어 캐나다나 미국에 가면 횡단보도가 많지 않아요. 사거리인데도 신호등이 별로 없어요. 그냥 빨간색으로 글씨로 잠시 멈췄다 가라고 쓰여있는 곳들이 많은데 한 번도 그냥 지나가는 차를 본적이 없어요. 저녁때면 무조건 집에 가야돼요. 밖에서 술 마시면 안 되고 뭐 그런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워낙 가족중심적이어서 그냥 그렇게 하면 안되다라고 생각하더라구요. 야근도 마찬가지였고요.

김기자: 어땠어요? 캐나다에서의 그런 생활
제가 그렇게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고 즐겁게 밖에서 놀고 하는 성격이 한국에서도 아니었기 때문에 와이프랑 둘이서 즐겁게 잘 지냈던거 같아요. 결혼은 2012년도에 했고 다음해에 캐나다에 간 거죠.

김기자: 아기는 한국 돌아와서?
아뇨. 캐나다 가자마자 임신을 하게 됐고 거기서 낳았어요. 그게 일찍 돌아오게 된 이유로 컸어요. 이제 4살이죠.

▲ 캐나다에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김기자: 재미있는 에피소드 뭐가 있을까요?
‘팁 문화’요. 팁을 줘야 하는 그런 문화가 낮설어서... 음식점에 가서 계산을 할 때도 예를 들어 이게 10불이면 한국은 부가가치세 포함해서 적어 놓잖아요. 캐나다는 부가가치세 따로 자기가 계산해야 해요. 메뉴판에는 음식 고유의 가격만 있으니까 이걸 사 먹으면 11.5불이 나오는거에요. 그런데서 오는 문화차이 정도 있었는데 크게 한국이랑 다른 건 없었어요.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 하더라고요.

김기자: 와이프분과는 오래 사귀었어요?
예. 25살부터 연애를 했으니까요. 한 5년 연애하고 결혼 했죠. 둘 다 성격이 불같아서 캐나다에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그래서 더 추억이 많죠.

김기자: 맞벌이 하시나요?
아내는 지금은 애기만 키우고 있어요. 치기공사 일 말고 다른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대학을 갔거든요. 결혼하기 전부터 그 일에 흥미를 많이 느끼진 않았대요. 저도 지금은 수술 때문에 직장 그만뒀는데 구하는 곳이 많은 일이어서 회복하고 천천히 복귀 하려고요.

김기자: 캐나다 가있는 동안 여행은 다녔나요?
몬트리올과 토론토 정도밖에 못 가봤어요. 오타와나 토론토는 현대식 건물이 대부분이고 그냥 서구의 잘 만들어진 도시라는 이미지인데 몬트리올은 유럽 한 곳에 떨어뜨려진 것 같은 느낌? 고성도 많고, 관광지로는 한번 가볼만할 것 같아요.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했는데도 여전히 엘리자베스 여왕을 국모처럼 모시고 있죠. 그래서 현지에 있는 지명들이 영국 지명이나 프랑스어 지명을 베껴온 것들이 많아요. 건물들도 그렇고요.

김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
앞으로의 계획이요? 실리는 건가요? 꼼짝없이 그렇게 해야하는 거네요? ㅎㅎ 지금 하고있는 치기공사 일 꾸준히 하는 거죠.

김기자: 캐나다나 외국 다시 나갈 생각은 없나요?
없어요. 처음 1년, 2년은 재밌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과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문화도 다르고 하니까 좀 괴리감도 느껴지고 언어 장벽도 물론 있었고요. 여행으로는 가고싶지만 거기서 살 생각은 없어요.

김기자: 캐나다 말고 외국 경험해본데 어디 또 있어요?
말레이시아랑 필리핀, 멕시코 이렇게 있네요. 멕시코는 캐나다 있을 때 갔는데 비행기로 2시간 반 정도? 3시간 안걸렸던 것 같아요.

손완호 객원기자: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키랑 보드 타는 거라고 하셨는데 몸관리을 위해서 따로 하는 운동은?
헬스 같은 건 중학교부터 했었고요. 그리고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싱을 좀 했었어요. 왜 그렇게 집착을 했냐면, 제가 어릴 때 여름캠프에 갔는데 50대 이상의 혈우병 선배님들이 장애를 많이 가지고 계신 걸 봤어요. 그걸 보고 운동하지 않고 내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좀 집착적으로 운동을 했죠. 세브란스에서 처음 저를 혈우병으로 진단했던 의사 선생님 말씀이, 긴 말씀 안하시고 아이가 운동 많이 하고 몸에 근육이 많이 붙으면 출혈이 줄어들겁니다라는 짧고 간단한 워딩인데 그 말만 듣고 열심히 운동을 했었던 것 같아요.

김기자: 그게 종이 한 장 차이인거 같아요. 충분한 운동을 해서 근육이 몸을 보호해주는냐, 반대로 운동이 과해서 출혈로 이어지느냐.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내가 어느 정도 운동을 버텨내는 몸인지 가늠을 하고 최적의 운동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검사해보면 1%가 채 안나오는 중증이거든요. 근데도 출혈이 잘 안일어나니까 이상해서 몇 년 전에도 또 검사를 했었어요. 정말 중증이 맞냐? 맞대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으로 단련되고 보호와 운동의 밸런스를 잘 유지했던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 가족들과 최근 모습

김기자: 복싱 할 때 많이 터지지 않았어요?
많이 터졌었죠. 처음 가면 한 달 동안은 손등이 성할 날이 없어요. 그런 건 크게 약을 맞지 않고도 다 아물더라고요. 혈우환우분들도 꼭 운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김기자: 부모님이 반대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오히려 권유하셨죠. 진단 받았던 선생님의 아까 그 말 한마디가 많은 걸 바꿔놨어요. 예를 들면 의사선생님이 아이가 운동을 많이 하면 많이 다칠 겁니다. 조심시켜 주십시오 그랬으면 반대로 살았었을 꺼에요.

김기자: 해외 취업이나 워킹홀리데이 준비하는 헤모 친구들한테 조언 해준다면?
절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저도 혈우병 환자로서 35년 살아 봤지만 시야가 굉장히 좁을 수 있어요. 나는 혈우병이니까 이건 안될 거야. 확인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고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근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면 절대 가능성이 커지지 않아요. 뭐든지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까요.

▲ 손완호 객원기자(가운데), 김태일 기자(우)와 찻집에서의 만남이었습니다.

처음 봤을때부터 '파이터' 같은 느낌을 준 현준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권투를 했었군요^^ 남다른 길을 찾아 걸어 온 현준씨의 인생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이 인터뷰가 해외 취업을 모색하는 혈우가족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현준씨 고맙습니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하석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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