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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포트이식 첫 수술을 기억하며감정이 격해질 때 그것을 감추는 방법
황정식 기자  |  nbkiller@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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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06  15: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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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극도로 예민해진 감정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몸의 불편으로 인한 시술이나 수술의 경험이라면 그 감정을 컨트롤 하기에 쉽지가 않다. 죠 맥도날드(Joe McDonald)는 두 혈우병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첫번째 아들이 약 투여를 위한 포트 삽입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가던 날을 기억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어떻게 통제했는지, 또 어떻게 극복했는지 들어보도록 하자.

아내와 나는 병원 침대 옆에 서서 마취 전문가가 들어와 수술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내 첫째 아들 줄리안(Julian)은 매일 몸에 많은 양의 약을 투여해야 했기 때문에 포타-케스(port-a-cath, 카테터의 한 종류)를 달기로 했다. 줄리안은 우리에게 완전히 생소한 합병증도 앓았는데, 혈우병이면서도 약한 항체가 있는 합병증이 있었다.

간호사가 줄리안에게 부족한 응고인자 VIII 단백질을 정맥에 주입했을 때 작은 괴물들이 약을 먹기 시작하며 그 효과를 줄여버렸다. 의사의 이 조잡한 설명은 이미 과포화된 나의 뇌에 의미 있게 전달이 되었다. 나는 “출혈 질환에 대해 얼마나 더 배워야 합니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혈우병에 대한 학습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내인 카잔드라(Cazandra)와 나는 줄리안 옆에 서서 웃으면서 재미있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의 생각은 줄곳 다른 곳에 있었는데, 첫번째 생각은 아들 줄리안을 들쳐 안고 병원에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줄리안은 포타-케스를 이식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줄리안은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줄리안의 위기 상황에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 포트 삽입술의 예

내 아들의 진단 초기에는 나의 감정이 현실로 다가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병인, 아버지, 및 남편으로서의 혈우병 및 기타 문제로의 투쟁은 내가 그들을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나의 감정을 깊숙한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이러한 능력으로 나의 아들에게 완벽한 사람임을 입증했다. 나는 나의 이러한 감정들을 억제하며 그 감정들이 등장할 때마다 응급 상황을 잘 처리하게 되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만성 질환에 직면한 사람을 돌볼 때 경험했던 정서적 감정을 푸는 데에는 또 다른 몇 년이 더 필요했다. 그 후에는 내부 공동 출혈 커뮤니티를 둘러싼 혼돈이나 첫 아들의 출혈 질환과 관련된 다른 문제를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대처 전략을 배워야 했다. 혈우병과 관련된 치료는 많은 결과들을 이해하면서 귀중한 자원들을 만들어냈다.

담당 의사가 내 아들의 긴장을 풀고 수술 준비를 돕기 위해 들어왔을 때, 나는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으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활짝 웃음을 지었고 곧 나는 그의 뺨에 키스를 했으며 간단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수술이 잘되기를 바랐다. 그때 줄리안의 웃음이 그가 수술실에 누워있을 때 오히려 나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랬다.

나는 카잔드라와 손을 잡고 걸으며 수술을 통해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존재는 우리 가족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며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때때로 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나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그녀 목소리의 멜로디에서 편안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줄리안은 순식간에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다. 카잔드라와 함께 그의 수술과 모든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는 침대 옆에 앉아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기쁨과 평화만을 느낄 수 있었다. 혈우병으로 알려진 어렵고 힘든 도로이지만 우리는 함께 그 위를 여행하면서 또다른 큰 도약을 하게 된 것이다.

[헤모라이프 황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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