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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무지개처럼 내려온 나의 아들'힘겹게 얻은 아이, 무지개처럼 밝게 자라주었으면'
황정식 객원기자  |  nbkiller@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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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09  17: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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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 서나 혈우 환자의 걱정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걱정만하다 돌아가시는분은 그 분 밖에 없을 것. 가장 큰 커뮤니티를 자랑하는 혈우 단체 중 하나인 미국 환자 단체 HFA(Hemophilia Federation of America) 홈페이지에서 이러한 어머니의 수기를 담은 “엄마의 블로그 : 사랑 주사(Mom’s Blog : Infusing Love)”를 번역해 싣는다. 제목에서와 같이 고통스러운 주사가 아니라 글 속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3, 2, 1", 카운트다운을 하며 숨을 죽이고 테스트기를 뒤집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개의 분홍색 선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북돋아오는 기쁜 감정을 기다리며 잠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를 위해 간절히 바라고 기도를 드렸지만 행복한 감정이 그만큼 스며들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유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번째는 크리스마스 밤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편의 생일에 일어난 두 번의 고통스러운 유산 이후 저는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남편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이러한 소식을 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왜 몸이 좋지 않냐고 묻는 것이나, 평소 저녁식사와 함께 즐기던 와인을 거부하는 것을 계속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임신사실을 말할 수 있는 백만가지 예쁜 방법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어쩌면 저는 식탁위에 아기 신발을 예쁘게 포장해 놓아 올려 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일을 겪은 후, 저는 그것이 특별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저의 용기와 창의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 묻고 울며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아이를 또 잃을까 두려워…”

▲ "계속되는 유산에 임신 사실을 기쁘게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8주간의 긴 생각과 반복되는 악몽 끝에 저는 초음파 검사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임신이 안정적인지 심장 박동을 봐야 합니다.” 의사의 설명은 나에게 치명적이었고 나는 배를 드러낸 채 드러누워 또 다른 실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저는 지긋이 눈을 감았고, 남편은 나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모니터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영원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지난 후, 의사 선생님은 내가 결코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기가 있고, 심장 박동이 있습니다.”

레인보우 베이비(Rainbow Baby)는 폭풍우 뒤에 오는 무지개처럼 상실 뒤에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폭풍으로 인한 피해는 남아 있지만 무지개는 어둠속에서 빛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의 임신은 축복이었지만 그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임신성 당뇨병에 태반융모 출혈까지 합병증과 정신적인 공포가 밀어닥쳤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고위험군으로 지정되어 철저한 감시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서 태아 교육을 다니는 동안 저는 하루에 세 번씩 혈당을 체크하고 월간 성장 스캔과 모자 태아 의학으로 NST(Nonstress Test)를 받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혈우병 아이의 출산 위험이 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보인자로서 항상 제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옵션을 고려했지만 남편과 저는 양수 천자를 통한 혈우병 사전진단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보다 믿음을 선택했고 그이 역시 출생 후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다수의 개업의와 마찬가지로 제가 다니던 산부인과의도 출혈장애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혈액전문의에게 진료를 의뢰했습니다. 약속된 진료시간이 되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족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새롭고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지역의 혈우병 센터는 비좁은 대기실에 관절 출혈, 혈종, 자가주사 및 출혈장애가 있는 삶의 위협적인 측면과 그러한 삶을 다룬 잡지, 팜플렛이 즐비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저의 이름이 호명됐고, 유쾌한 목소리로 반겨주는 간호사님이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그곳에는 각자의 전문분야와 지침을 가진 팀 구성원이 안팎으로 회전하는 문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사 방문의 표준 치료와는 달리 여기서는 개인적인 치료 방침이 준수되고 있었습니다. 유전 상담사가 저에게 유전자 돌연변이, 염색체, 팩터 레벨과 같은 정보를 쏟아 붓기 시작했을 때 정신이 없었고 복잡한 생물학 수업처럼 느껴졌습니다.

▲ 애슐리와 그녀의 남편은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 두 아들(9세, 1세)과 함께 살고 있다. 그 중 한 명은 혈우병A 환자이다.

저의 아이 RJ는 2021년 10월 초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건강하고 아름답게 태어났으며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계획대로 아이의 제대혈을 추출하여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갓난아기의 귀여움에 너무나도 정신이 팔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유전자 카운슬러가 전화를 걸어 우리 가족의 행복한 아침을 깨뜨릴 때 마침내 현실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말하기 전부터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의 어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9개월 동안 이 진실의 순간을 위해 준비해왔지만 갑자기 모든 준비가 사라져서 나를 벗겨내고 나약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저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고 제가 꿈꾸던 삶은 찢어지고 끝없는 걱정의 나락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건강 관리가 얼마나 발전했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혈액 전문의가 저를 안심시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산후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희망의 등대를 찾은 것은 다른 혈우 엄마들과 대화의 장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부모로서의 용기와 자녀의 회복력은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거품속에 갇힌 채 세상과 등지고 완전히 잠길 수 있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포츠를 하고 평범한 어린 시절의 재미를 즐겼으며 나에게 꼭 필요한 위안들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 힘을 찾았습니다. 아이의 교육과 활동에 힘을 불어넣어주었고 슬픔은 인생의 목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출혈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우리가 계획한 여정이 아닐 수도 있지만 폭풍우 뒤에는 항상 무지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헤모라이프 황정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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