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외국환우이야기
"혈우병 항체로 휠체어 생활도 했지만 지금은..."요즘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즐겁다는 단노 후쿠시씨 (대학생)
조은주 기자  |  cap38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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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29  1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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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 치료를 계속 받아왔지만 혈우병이 어떤 병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는 고등학교 생물 수업시간에 혈우병에 관한 내용을 접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다.

삼촌이 혈우병인 관계로 저는 출생 후 조기에 혈우병 진단을 받았고, 처음에는 병원을 다니며 정기 보충요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가정요법으로 전환해서 부모님께서 정기적으로 정맥 내 투여를 해 주셨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다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정기 보충요법을 받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었죠.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 '이걸 하면 안 돼', '저걸 하면 안 돼' 매일 입이 닳도록 주의를 주셨던 것 같은데, 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고, 그 때문에 자주 출혈을 발생시키곤 했습니다.

혈우병이 유전적 병이고, 혈액 중에 포함된 응고인자 가운데 혈액 8인자와 제 9인자의 어느 쪽이 결핍되어서 일어나는 출혈성 질병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던 것은, 고등학교 생물수업에서 유전에 대해 배웠을 때였습니다.

그 수업을 받기 전까지는 '왜? 왜? 왜 나만?' 이런 원망의 마음이 있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병이 왜 낫지 않는지, 왜 나는 출혈이 잘 생기는지, 왜 정기 보충요법을 받아야 하는지 등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동안의 궁금증이 모두 풀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 응고인자 항체가 생기는 바람에 초등학교 시절 일시적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다. 「왜? 어째서 나만?」처지를 비관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왜? 왜 나만?' 이런 처지를 비관하는 마음이 강했던 이유는 아픈 이유를 잘 몰랐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제한이 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초반에는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했는데, 얼마 후 응고인자 제제에 대한 인히비터가 생겨서 정기 보충요법의 효과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출혈이 빈번하게 반복되었기 때문에 체육은 수영만 가능했고, 평상시 학교생활을 할 때도 보조 선생님께서 늘 옆에서 돌봐 주시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항체를 없애는 치료를 위해 8개월 정도 입원했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 자칫 잘못 움직이면 출혈이 발생할 정도로 출혈 리스크가 컸기 때문에, "절대 안정"이라는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운동 기능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아무리 주의를 주셔도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철부지였기 때문에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서 휠체어로 행동을 제한하셨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휠체어 생활을 하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지팡이를 짚고 꼼지락거리며 움직였기 때문에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데 왜 학교에서 휠체어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왜? 왜? 왜 나만?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원망하는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항체수치가 줄어들고, 정기 보충요법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행동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다

다행히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휠체어에서 해방되었고, 목발로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보조 선생님의 돌봄은 계속 되었지만, 등하교(도보 10분 정도) 할 때 어머니의 케어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6학년이 가까워지면서 운동 제한을 목적으로 보조적인 역할을 했던 목발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덕분에 근처 공원에서 친구들과 캐치 볼을 하는 등 평범하게 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통학 시간은 전철로 10분 미만 걸렸기 때문에, 입학 초기에는 어머니와 함께 등하교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등하교를 했고, 중학교 2학년 무렵에는 체육시간에도 약간의 제한이 있는 정도였답니다. 얼마 후 목발도 완전히 벗어 던졌고, 보조 선생님의 돌봄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스포츠에 대한 제한이 조금씩 풀리면서 수영 밖에 못하던 제가 축구, 소프트볼, 배구 등 웬만하면 대충은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외활동이나 수학여행 때도 보조선생님께서 따라오시긴 했지만, 엄마는 동행하지 않으셨고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학창시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더욱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주변의 배려 덕분

고등학생이 되면서 통학은 자전거로 했고. 체육도 별다른 제한 없이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 중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반별 매치 축구시합에서도 헤딩(원래 헤딩은 금지)을 하거나 다소 아파도 아픔을 감수하고 붕대를 감은 채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체형 상 운동을 그렇게 잘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친구들로부터 의외로 잘 뛴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 들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학여행을 비롯해서 매일매일이 보람찬 고교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즐거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때야말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즐거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운전면허를 따고,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가거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매우 즐겁고 보람 되게 보냈습니다. 전공은 임상 공학이지만 임상 공학사와 임상 검사 기사 면허를 모두 취득하여 취업활동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혈우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원인은 혈우병이라는 질병에 있다기 보다는 어려움에 잘 대처하지 못하거나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하는 제 성격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3학년 무렵에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밤샘이 많아지면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고, 한 달이나 등교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생이 된 시기에도 왠지 여름 무렵이 되면 의욕이 없어졌고, 내내 백수처럼 지내다가 결국 수능에 2번이나 실패하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또한 자가 주사도, 중학생 무렵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몇 번은 혼자서 잘했기 때문에 불안도 무서움도 없었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나 뒷정리를 하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응석을 부렸고 대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 부모님 품을 떠나 자취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는,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와 뒤돌아보면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이젠 보통 사람과 같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교 시절보다 한층 더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죠. 이 모든 것이 주치의 선생님이나 병원 스탭 분들의 지도 아래, 부모님께서 주 2회 정기적인 투여를 빠짐없이 해주시고 초·중학교 때는 보조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케어를 해주시고 주변분들께서 많이 지지해주시고 배려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한 후에는 주사도 2000단위로 주 2회 실시하고 있으며, 요일은 정하지 않았지만 4일 이상은 넘기지 않고 2~3일에 한 번은 반드시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그 기록을 노트에 꼼꼼하게 메모도 하면서 스스로 건강 관리를 잘 하고 있습니다. 향후의 과제는, 뜻이 높은 것에 비해 위기 대처 능력이 서투른 부분을 고치는 것이라고 할까요?...하하

◈ 환우회의 이사로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으로 운영의 묘를 살려 조직력을 높이고, 혈우병 환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도록 공헌하고 싶다.

최근에는 저처럼 일상 생활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혈우병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정형외과 선생님들께서도 더 이상 혈우병 환자들에게 장애란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환우회에 오는 아이들만 봐도 정기 보충요법만 제대로 시행하면,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혹시 제가 어릴 적 겪었던 괴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환자분이 계시다면 지금은 일상생활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괴로울 수도 있지만 그 부분만 극복하신다면 장래에는 일반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랬듯 과거의 힘든 경험도 결과적으로는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요. 만약 제가 초등학교 시절,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자유롭게 행동했더라면 더 빈번히 출혈을 반복했을 것이고, 지금은 정말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또한 아이가 혈우병 진단을 받은 부모님들께서는 '출혈이 발생하면 어떡하지'하며 불안해서 허둥대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치료법이 상당히 발달했기 때문에 혈우병 자체가 치명적인 병도 아니고, 많은 환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서는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지 마시고, 가능한 한 환우회에 참가하셔서 혈우병 환자의 선배분이나 의사 선생님께 어드바이스를 구하고, 적극적으로 정보 교환을 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부모님의 뒤를 이어 환우회의 이사를 하고 있는데, 환자들의 웃는 얼굴을 지키는 것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 환우회는 밝은 사람이 많고 매우 분위기가 좋은 모임입니다. 크리스마스 모임이나 여름캠프를 통해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때로는 자가주사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앞으로 더욱 좋은 분위기의 환우회를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향후에는, 지금까지 선배들이 구축해 놓은 국가 지원 정책에 안주하지 않고, 만일의 경우 환우들을 대변해서 국가에 제대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환우회의 조직력을 높여 가고 싶습니다.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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