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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을 게보린으로 견뎠던 어린 시절"수술 후 회복중인 김용호씨와의 인터뷰
하석찬 유성연 기자  |  newlove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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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7  14: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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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을 가졌다 해서 모두가 조심조심 살아가는 인생은 아니다. 때로는 거친 풍파를 만나고 터프한 자세로 헤쳐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많은 장년층 환자들이 혈우병이 생소하던 시절, 발달된 의학의 도움 없이 삶을 걸어와 이자리에 있다. 그들의 걸음이 어떠했는지 오늘은 버스기사 김용호씨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았다.

유기자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호씨 : 저는 은평구에 거주하고 51세 김용호(9인자)라고 합니다.

유기자 : 현재 어떤 일을 하시나요?

영호씨 : 노인복지관에서 시설 일을 오래 하다가 다리가 불편해서 버스 운전으로 직무를 변경해서 지금 복지관에서 버스 운전하고 있습니다. 직책은 차량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한국혈우재단 물리치료실 휴게실에서 인터뷰중인 김용호씨와 유성연 기자

유기자 : 발목 수술 하신 것 같은데 수술을 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영호씨 : 제가 한 2~3년 전에 고관절 인공관절 수술을 한 번 했었는데 그러고 나서 아주 편하더라고요. 수술이라고 해도 이런 관절 계통은 처음 해봤거든요. 그러고 나서 잘 지냈는데 어느날 출근을 하는데 발목이 아파서 20분이면 갈 거리를 50분 만에 갔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침마다 아프더라고요. 한 보름을 아팠거든요. 그래서 '다 됐나 보다, 수술을 해야겠다' 결심을 했는데 또 직장을 다니다 보니까 날짜 잡기가 쉽지도 않고, 또 발목이 수술 후 재활치료도 오래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10월쯤에 하면 병가 두 달 쓰고 내 휴가 남은 거 쓰고 하면 올해는 끝나고 내년에 혹시 또 안 되면 내후년에 또 휴가를 또 받아서 쓰면 되겠다 싶어서 10월에 수술하게 됐어요.

▲ 아내분과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신다는 용호씨.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입니다.

하기자 : 수술은 어떤 수술을 하신 거예요?

영호씨 : 발목은 사실 간단한 건데요. 째서 골극 제거하고 염증 제거하고 뼈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기자 : 수술 경과는 어떻다고 하던가요?

영호씨 : 혈우환우들 중에서 수술 경과가 좋다고 하는데요. 괴사도 없고 상처주위도 깨끗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써봐야죠. ㅎㅎ

하기자 : 혈우병 진단은 언제 받으셨어요?

영호씨 : 저는 혈우병 진단을 좀 늦게 받았어요. 시골에서 살다 보니까 병명도 모르고 살았죠. 재단이 생기면서 병명을 알았어요. 90년도인가 91년도인가 한 30년 전에 라디오 방송에 한 번 나왔나 봐요, 그 방송을 우연히 형이 듣고 먼저 검사하고 '너도 와서 검사 한 번 해봐라.' 해서 우리 두 형제가 혈우병이라 걸 알게 됐죠.

하기자 : 그럼 약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영호씨 : 게보린(진통제)이죠, 뭐. 다른 약은 듣지도 않고 게보린을 먹으면 그래도 한 2분은 더 버텨요. 그걸로 인해서 팔 장애를 입었고 고관절은 한 번 출혈이 됐는데 3년 가까이 아예 못 걸었고 회복되는 데 7년이 걸렸으니까요. 그냥 자연 치유 형태로 하다 보니까.

▲ 포르투갈 ... 포르토 강변에서

하기자 : 약은 어떻게 처방받아 사용하세요?

영호씨 : 평일 직장 끝나고 재단에 야간 진료를 받아서 아플 때마다 자가로 저는 맞고 있습니다.

유기자 : 버스 일 하시면서 힘든 건 없으세요?

영호씨 : 힘은 안 들어요, 사실. 제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서.

유기자 :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영호씨 : 옛날에는 등산을 주로 많이 했고 수영도 오래 했고 헬스도 많이 했었습니다. 사람이 근육이 붙으면 붙을수록 출혈이 안 생겨요. 그리고 제가 오기가 강해서 끝까지 하는 편이라 아프든가 말든가 하는 생각으로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으로 더 하고 그랬었죠.

▲ 코헴의집과 재단을 왔다갔다 하며 물리치료를 받고 회복 중입니다. 사진은 수술 후 보호기를 착용한 왼쪽 발목

유기자 : 아내분은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영호씨 : 아내는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죠. 저는 원래 어렸을 때 너무 많이 아팠거든요. 말했다시피 7년을 제대로 못 걸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런 질환은 우리 대에서 끝나야 되겠다 싶어서 결혼할 마음이 없었어요. 누가 소개도 많이 해줬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앞에 한마디도 안 한 여인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마음이 그렇게 편한 거예요. 말 한마디도 안 섞었거든요. 그런 경험이 처음이거든요.

유기자 : 완전히 운명적인 만남이네요.

영호씨 : 그렇죠. 내가 먼저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평생 한이 되겠다 싶어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연애를 하든지 말든지... 제가 대시해서 만나다 한 번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게 되어서 지금 결혼까지 하게 됐네요.

유기자 : 아내분 자랑 좀 해주셔 보세요.

영호씨 : 자랑이요? 일단 나보다 키가 크고 경제력도 나보다 좋고 세 살배기의 그 순수함을 아직도 갖고 있는 여인? 한마디로 딱 표현하면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이 있는데 '소녀 교수님'이라고.

▲ 다리가 회복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또 해외여행을 가고 싶네요. 여긴 에스토니아 탈린 해변입니다.

유기자 : 아내분이 교수님이신가 봐요?

영호씨 : 네, 그래서 소녀 교수예요.^^ 말 그대로 몇 마디 나눠보면 아실 거예요.

유기자 : 수술 부위가 어느 정도 회복되시면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계획은 있으신가요?

영호씨 : 아내 직업이 그렇다 보니 매해 학회를 많이 다니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데는 제가 같이 잘 안 가고 유럽이나 미국 같은 데 가면 너무 거리가 머니까 그때는 한 번씩 가주는데 코로나 끝나면 세미나 같은 데 갈 때 여행 겸 같이 가죠. 아내는 일이고 나는 여행하고…. 하하 기회가 되면 또 가야죠.

유기자 : 어느 쪽 가르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영호씨 : 아내가 약대를 나왔어요. 그리고 박사 과정을 신경계 독성학을 전공했고 지금 지방 국립대에서 약학대 학장을 맡고 있습니다. 보통은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습니다.

유기자 : 지금까지 가보신 여행지 중에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 있으시다면?

영호씨 : 저는 개인적으로는 에스토니아 탈린이 참 좋더라고요. 북유럽인데요. 일반인들이 접하기가 힘든 곳이거든요. 에스토니아가 발트 3국이라고 해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또 하나 더 있는데 그쪽이 괜찮더라고요. 또 탈린이 어떤 곳이냐면 영화 슈렉에 피오나 공주가 갇혀 있던 성, 탈린 성을 모티브로 해서 그걸 만들었으니까. 어느 여행지든지 해외를 나갔다 오면 사람이 시야가 넓어져요. 보는 눈이 달라요. 그런 면에서는 젊은 친구들은 반드시 나갔다 오는 게 참 도움이 더 많이 될 것 같아요, 삶을 살면서.

▲ 워싱턴DC 백악관 앞

유기자 : 그러면 여행하실 때 약은 어떻게 가지고 다니시나요?

영호씨 : 비행기 수하물로 가면 됩니다. 대부분 우리 환우들이 해외여행 가면 약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데 1회분은 그냥 비행기에 가지고 탑승할 수가 있고 나머지 용량은 수하물로 붙이면 돼요.

유기자 : 올해 두 달 남았는데 도전해보고 싶으신 거 있으신가요?

영호씨 : 글쎄요. 다른 분들도 다 그러겠지만 너무 워낙 어렸을 때부터 아픔이 많아서 '하고 싶다' 이런 것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좌우명도 아닌데 '고쳐가면서 살자' 이런 게 뇌에 박혀서 성격도 잘못됐으면 고치고 몸도 안 좋으면 고치고 그냥 뭐든지 고쳐가면서 살자. 이런 주의입니다.

유기자 : 마지막으로 아내분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영호씨 : 결혼을 하고 좋은 점이 참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서로의 능력을 존중해주고 독립적으로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거에요.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것도 좋지만 각자 가진 능력으로 멋지게 살아나가는 것도 행복인 것 같아요. 좋은 말들이 딱히 생각이 안 납니다. 항상 마음으로 고맙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다 해줘요, 그리고 우리 부인은 나 같은 사람을 못 봤죠. 집에 뭐가 고장 나면 어디 안 맡기고 제가 전기, 가스 뭐든지 고쳐요. 신기해하죠. 내가 무엇이든 다 고치고 머리도 스스로 깎고 뭐든지 나 혼자 다 하거든요. 누구 손을 안 빌리고 집안일에서부터 요리까지 내가 다 하니까, 그렇게 사는 거죠. 하하

[헤모라이프 하석찬, 유성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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