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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요법으로 장래 관절장애를 막는 것이 중요"일본 혈우병환자 인터뷰 - 대학생 사쿠마 코야씨 
김태일 기자  |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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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3  19: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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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생물물리학... 자신에게 맞는 것을 발견하면 삶이 즐거워져
-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 보충요법으로 장래 관절장애를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 예방요법으로 관절장애를 막는 것이 자신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다고 이야기하는 일본 혈우병 환자 사쿠마 코야씨

★ 정기적으로 보충요법을 받으면서 자신의 병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다.

저는 태어나자마자 혈우병 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응고인자 보충요법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가정요법을 시작했고, 병원에 자주 다니며 정기적으로 보충요법을 받았던 것 같긴 한데 당시의 기억은 없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자주 다녀서 그랬는지 가정요법을 시작했을 무렵, 저에게 무언가 특별한 병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 자가 주사를 배우기 위해 환우회의 여름캠프에 참가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혈우병이라는 병명 뿐 아니라 혈우병이 어떤 병인지, 그리고 원인과 치료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 그것들을 알게 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니던 병원은 어린 아이에게도 인폼드 콘센트(informed consent - 설명과 동의)를 정확하게 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정기적으로 통원하는 과정에서 병원 선생님들께서 부모님과 협의 하에 저를 능숙하게 세뇌시킨 것 같기도 합니다. 질병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만일의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병을 알려라!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주위의 친구들에게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학교 담임선생님, 보건실과 동아리의 고문 선생님에게만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이면 질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에 친한 친구에게는 이야기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수록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넘어져 머리를 다쳐 심각한 데미지를 입고 두개내 출혈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항상 곁에 계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비록 병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도, 만일의 경우 대응방법은 확연히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위의 친구가 질병에 대해 알고 있으면, 자가 주사도 좋은 타이밍에 맞춰서 놓기가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체육시간에 운동을 해야 할 경우 예비 보충 요법을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실시할 수가 있죠.

★ 고등학교에서는 음악을 만나고, 대학교에서는 생물물리학을 전공

어릴 때부터 정기 보충요법과 예비 보충요법을 철저히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 생활의 제약은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체육 수업은 물론 운동회까지 참가했고, 소풍도 갔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다만 체육 시간에는 철봉이나 뜀틀이 금지되었고, 연식 야구부에서는 슬라이딩처럼 머리를 다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금지돼 있었습니다.

사실은 고교시절에도 야구를 무척 하고 싶었지만 경식 야구를 한번 시도해본 결과, 아무래도 경구 땅볼을 몸으로 받는 다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서 포기를 했습니다. 그 후, 검도는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가 있으니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검도부에 가입했지만, 몸을 보호해주는 호구 이외의 곳에 죽도를 맞으면 무척 아팠고, 발을 디디는 쪽의 발바닥이 부어오르기도 하면서 검도 역시 저에게 무리인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반년 만에 탈퇴를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먼저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후, 일단 시도해보고나서 '아, 이건 무리이겠구나'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포기하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어째서 나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할까? 이런 원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검도부를 그만둔 뒤 들어간 클래식 기타부에서 코드(화음) 연결 방법에 논리가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됐고, 음악에 몰두하게 되면서부터 주변 친구들과 제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었죠. 대학생이 되면서 재즈는 코드가 가장 복잡한 음악이라고 느꼈고, 현이 6개 밖에 없는 기타보다 열 손가락에 음이 10개나 되는 피아노에 관심이 생기면서 재즈 피아노를 치게 되었습니다.

은둔형에다 퍼즐 풀어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서 할 수 있는 음악, 특히 코드라는 퍼즐을 푸는 재즈는 저에게 딱 들어맞았습니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재즈와 같은 이유로 수치 계산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생물물리학을 선택했습니다.

생물물리학의 연구 역시 저에게 잘 맞아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연구실에 가서, 졸업 연구나 논문을 읽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 석사과정을 밟고, 장래에는 생물물리학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없는 성격이라 재즈는 일단 접어두고 우선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연애도 같은 이유로, 초식은 커녕, 절식중인 남자입니다.(하하)

▲ 사쿠마 코야씨는 여러 스포츠와 취미활동에 도전해보고 그 중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 실패를 겪으면서 할 수 있게 된 자기관리 / 앞으로도 관절을 잘 지키고 싶다.

현재 저는 발목의 가동 범위가 약간 좁아진 것 이외에는 관절 장애가 없습니다. 그것은 의사선생님과 부모님이 제가 어릴 때부터 정기 보충요법과 예비적 보충요법을 포함해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해 주신 덕분이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자가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혼자서 몸 관리를 하게 된 것은 재수생 시절 학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면서 그때부터 스스로 자기관리를 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주최하는 iGEM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학부 학생이 참가하는 합성 생물학 국제대회입니다. 여름방학 무렵부터 매일 실험에 빠져 지내느라 컨디션 관리도 엉망이었고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날, 자전거 페달에 종아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귀가해서 주사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새벽 4시까지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고 자택으로 돌아왔습니다만, 공항에 갈 때 해야지…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는 꼭 해야지… 이런 식으로 주사 타이밍을 자꾸 놓쳐서 결국 주사를 투여하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퉁퉁 부어서 걷기도 힘든 상태였습니다. iGEM에서 발표만 했지 관광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정기 보충요법은 이틀에 한 번씩 하는 자가주사로 제제의 용해부터 주사, 부작용 검사, 투여 기록, 정리까지 단 10분이면 됩니다. 저는 이 "iGEM 사건"을 계기로 그 10분이라고 하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무심코 넘겨버릴 경우 얼마나 괴로운 일을 당하게 되는지 통감했습니다.

그 이후 정기 보충요법은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하도록 각별히 신경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늦잠을 잤을 때, 수업을 들어야 할지 주사를 맞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반드시 주사를 선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때때로 크든 작든 문제는 발생했고 저 혼자서 오롯이 제대로 된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모님을 떠난 지 4년정도 지났을 무렵입니다. 앞으로도 관절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잘 하고 싶습니다.

현재 참가하고 있는 오사카 환우회에서는 제가 가장 나이 많은 환자입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부탁으로 혈우병 환아를 가진 부모님들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격렬한 활동을 하는 어린 시절에는, 정기 보충요법과 예비 보충요법으로 관절 내 출혈을 예방해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 관절 장애를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달해주며 이런 것들을 베이스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내서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보내고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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