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상담.. 상담이란 단어만 들었을 때에는 어딘가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었다. 더군다나 집단이라는 말에 좀 어색했었지만 평소 고민이 많아 '한번 해보면 좋을것 같다'라는 생각에 신청을 했다.

토요일이 되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진행자인 권경희 교수님은 참가자 모두 처음보는 사람들이었는데 자기소개를 하지않고 뜬금없이 '인디언식 닉네임'을 정하라고 하셨다. 무슨 의미일까..? 하고 고민하면서 닉네임을 지었다.

내 닉네임은 '사막에 오아시스'. 사막이란 끝없이 모래언덕만 펼쳐진 절망적인 곳이다. 영화에서 보면 항상 힘들어하고 포기하려 할때마다 눈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장면을 많이 봐왔다. 우리 혈우환우라면 한번쯤 힘든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있을때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살기 위해 항상 힘을 내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을 했다. 그럴때마다 항상 어려움을 극복했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기에 닉네임을 그렇게 지었다.

상담이 따분할 것 같다고 생각된 적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참가한 회원분들이 간간히 농담도 던지시며 교수님들도 중간중간 게임을 하여 즐겁게 이어나갔다.

<나만의 거울> 이라는 상담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 존경하는사람 또는 닮고싶은사람 등을 얘기하는 거였다. 서로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부모님 얘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 힘들때마다 옆에서 지켜주시고 도와주신 부모님들 그런 부모님이 너무 고맙고 미안함 마음들.. 이번 상담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부모님께 여러 감정이 느껴져 상담 이후로 전화도 더 자주 드리고 크리스마스 즈음해 가족 생각이 간절해지는 요즘이었다.

<나만의 거울> 외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웃고 떠들고 게임 얘기 하느라 깊은 얘기를 나눠본 적 없던 또래 친구들의 속 깊은 말들을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스무살 전후의 또래 친구들 중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대학에 가거나 사회로 진출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런 경험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으로 꼽고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또 자신이 가진 장애를 단지 어떤 결핍으로 치부하지 않고 당당히 장애를 인정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갑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가 더이상 어리기만 한 혈우병환자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년 간 치료제 없던 기간을 살아내시고 이제 자신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서 계신 장년층 선배님들의 이야기에서는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통해 얻어진 귀한 지혜와 용기들이 담겨있어 내게는 어디서도 돈주고도 얻지 못할 값진 시간이 되었다.

집단상담 형태가 좋았던 점은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가자가 그 사람의 고민과 경험에 대해 공감되는 점을 표현하고 조언을 해주는 피드백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참가자 모두 프로그램에 만족했고 나역시 고민하던 것들을 여러 사람에게 피드백 받아 조금씩 풀어나갈 실타래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집단상담..미국 영화에 보면 알콜 중독자들이나 어떤 사고의 피해가족 같은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울기도 웃기도 하는 그런 장면이 떠올라 좀 멀게 느껴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직접 참여해보니 우리 혈우환우들에게도 정말 친근하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여러 사회심리적, 그리고 소통을 넓힐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우리 혈우사회에 적용되길 기대해 본다.

▲ 주희 객원기자 (우측 아래)

[헤모라이프 주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