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나은 혈우사회를 위해 이제는 박스터가 나서야 할 때

지난 1990년 한국혈우재단이 설립되면서 국내 혈우사회의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치료를 받지 못했던 혈우 환우들이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환자단체와 제약회사인 녹십자의 역할이 매우 컸다.

재단 설립으로 국내환자의 치료에 전환점이 됐고, 숨어있던 환자들이 서서히 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 갇혀있던 환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희망을 갖게 됐고 일반인들과 뒤 섞이며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졌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0년에는 국가적 관심이 높았다.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정책이 수립되면서 혈우사회는 민간단체의 지원에서 국가지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환자입장에서는 치료에 대한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국가에서 혈우병환자들을 위해 예산을 세우고 지자체와 함께 혈우병환자들의 치료비 지원을 나서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같은 변화 속에 또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환자단체도 많이 성숙되었고,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도 다양해 졌다. 한국혈우재단과 녹십자의 경우 비판받아야 할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혈우 환우들의 의료환경을 개선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박스터와 바이엘과 화이자 등 굵직한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환자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중에서도 박스터는 다른 다국적 기업과는 다른 면의 접근이 필요하다. 일찌감치 국내혈우 환우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박스터는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제품이 론칭 되면서 많은 환우들이 그 회사의 제품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최근 유전자재조합제제가 혈우사회에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박스터는 국내 8인자 유전자 재조합제제시장에서 월등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8인자 유전자재조합제제는 현재 박스터와 녹십자, 바이엘 등 3사가 경쟁하고 있지만 박스터의 매출에 비하면 녹십자와 바이엘의 유전자 재조합제제 시장점유는 턱 없이 낮다.

이처럼 박스터는 높은 매출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환자들에게 대한 특별한 지원 프로그램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라며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제 혈우사회에서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혈우사회의 역할’이라는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다양한 혈우환우지원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기업의 책임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혈우사회를 둘러보면 국내 박스터의 역할은 미비하다. 환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박스터사 치료제 이야기 말고는 박스터의 혈우사회 기여도에 대해서는 꺼내어 놓을 만한 말이 없다. 오히려 타사의 환자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그것은 위법 아니냐?’는 식으로 딴지를 걸어 올 판이다.

글로벌 박스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내 박스터는 시쳇말로 ‘눈치만 보는 쪽 팔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만약 한국박스터가 환자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무엇이들 못하겠는가? 회사차원에서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면 재단을 통해서 하든 아니면 환자단체인 한국코헴회를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박스터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한 혈우환우지원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쏟아 놓지는 못할망정, 국내환우들에게 오히려 알려질까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그 중에 한가지만 꼬집어 보자. - 화이자와 바이엘에서는 자사의 치료제를 사용하고 있는 환우들을 대상으로 <간호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약품사용법 부터 다양한 도움을 지원한다. 경험한 환우들은 매우 만족해 하며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박스터가 능동적으로 국내 환우들을 위해서 서비스를 찾아보려고 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박스터가 먼저 할수 있었다. 박스터는 복막투석을 하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에서 <홈케어 서비스>를 진작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을 방문해 투석하는 환자들을 돕고, 필요한 부분을 점검해서 환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투석환자들에게는 약품을 배송하기도 하고 의료보험 청구업무까지 대행해 준다. 전화 상담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보면 박스터는 눈치만 보는게 아니라 오히려 혈우환우들의 지원프로그램들을 숨기려는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 마저 들게 한다.

최근 HIV소송 때문에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녹십자의 경우 한국혈우재단을 통해서 꾸준히 환자지원 프로그램에 일정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 비판받는 만큼 그 책임도 다하겠다는 긍정적인 모습으로도 보일 수 있다.

녹십자는 과거, 환자들과의 갈등부분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얽혀있는 실타래를 빨리 풀어야 할 것이다. 회사로써는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얽힌 부분을 풀어버리고 혈우사회에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녹십자도 지금은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모습이다. 바이엘도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 보려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런 모습을 뒤로하고 박스터는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다. 더 나아가 한가롭기까지 한 모습이다. 자신들의 역할을 알면서도 굳이 나서지 않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필요하면 그때하면 되지 미리 나서서 화살을 맞지 않겠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박스터의 기업정신이 이런 모습이라면 혈우사회의 책임 있는 제약사 모습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기업이 움직이는 것과, 능동적으로 환우들을 위해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움직이는 모습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박스터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이제는 혈우사회를 위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환자들이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 몇 푼 지원하고 마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국내 혈우사회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혈우환우들이 되기 위해 한국 박스터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