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모IN헤모국제
“의사로서, 환자로서 혈우병 환자의 미래를 개척하고 싶다”[일본 환우 이야기] 의사이며 혈우병 환우인 나카무라씨
조은주 기자  |  cap3882@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0.27  04:41: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중증의 8인자 혈우병 나카무라 다쓰로는 이제 6년차 된 29세의 청년 의사이다. 소아과 의사인 나카무라는 “환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아픈 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의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한편, 그의 고향인 가고시마에서 환우회를 설립한 나카무라에게 의사로서의 꿈을 이뤄 낸 과정과 환우회 발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의사 나카무라씨는 중증 혈우병을 가진 일본 환우이다

○ 활달했던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면.....

어릴 때는 부모님께서 심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말리셨지만, 또래 아이들처럼 행동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자주 축구랑 야구를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친구들보다 더 활달하게 뛰어논다고 할 정도로 활발한 아이였죠. 어머니께서는 간호사였고,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에서 주사를 맞았습니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온 사방을 뛰어다녔고, 그러다가 관절이 부으면 부모님께 주사를 맞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셨는데, 제 주사 때문에 조퇴하기 일쑤였습니다.

조퇴가 빈번해서 혹시 직장에서 해고 당한는 건 아닌지, 어린 마음에도 걱정이 돼서 연락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부모님께 폐를 끼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 자가주사를 시작하고, 학교 양호실에 치료제를 비치해두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고생하지 않으시도록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자가주사 할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때까지는 출혈시 보충요법과 예방요법을 병행했는데, 일을 시작하면 마음대로 쉴 수가 없기에,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졸업 후 주 3회 정기 보충요법을 시작했습니다.

○ 의사를 동경하던 내가,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의사의 길로....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의료직에 종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무척 열정적인 분이셨고, 그분께 진찰을 받으면서 동경과 존경하는 마음이 동시에 생겼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을 보면서, 저도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후, 의료직 중에서도 ‘의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의학부를 목표로 한다고 해놓고 공부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 시기도 있었지만,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국립대학 의과대학에 합격,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 중에서도 특히 어려서부터 엄청난 노력파였던 누나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환경도 바뀌고 통원하는 병원도 바뀌었지만,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기에 혈우병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편하게 다니려면 운전면허를 따야한다’라며 신경 써 주셨고, 면허취득 후 차로 통학·통원이 가능해져서 참 좋았습니다.

이러한 가족들의 응원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혈우병을 핑계로 공부를 게을리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가서 트럼펫에도 도전하면서 보람찬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 환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소아과 의사로.....

대학 졸업 후에는 가고시마 시내의 병원에서 2년간은 초기연수를 받고, 3년째는 종합 내과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응급치료 분야에도 비중을 두던 의료기관이었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정기 예방요법 덕분에 업무 중 출혈로 인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거나, 결근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연수의 일환으로 아마미오섬과 도쿠노섬에서 각각 1개월씩, 낙도에서의 의료 경험도 해보았습니다. 낙도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연수를 별탈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치료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진료과 중에서 소아과를 전문으로 선택한 것은 환자로서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환자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어릴 적 일어난 사건과도 관계가 있는데, 철없던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께 ‘어째서 난 이런 몸으로 태어난 것이냐’고 묻고 말았습니다.

어머님을 탓할 생각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혈우병만 없으면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뭐든 다 할수 있을텐데..... 하는 억울한 생각 때문에 내뱉은 말이었는데 철없이 내뱉은 제 말에 어머니께서는 그저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야 생각없이 어머니께 상처 준 것이 말할 수 없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 진심어린 사과를 드리고, 열심히 키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과거에 제가 그랬듯이 자녀들이 부모를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때가 꼭 올 것이라는 것을 환자나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환자와 가족을 열렬히 지지하는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 장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환자들이 처한 환경을 바꾸고 싶다.

저에게도 나중에 자녀나 손자가 생기면, 그 아이들이 혈우병이나 혈우병 보인자일 경우 여러가지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제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더 이상 혈우병에 걸린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혈우병 환자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씩이라도 개선 시키고 싶습니다.

아프다고 해서 행동에 제한을 두기보다는 질병에 굴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혼자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 환우회를 설립하다

대학생 때 참가했던 환우회 캠프를 계기로 환우회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 가지로 고민도 많았고, 생각이 많아서 고심 끝에 히로시마 환우회에서 주최한 여름캠프에 참가했습니다.

그곳에서 제 또래의 젊은이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께 혈우병에 대한 생각이나 직업, 결혼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나니 저 혼자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환우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저처럼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대학 졸업 후 환우회 설립을 위한 활동들을 시작하였습니다.

▲ 의사 혈우병 환우 나카무라씨는 "혈우병 환우들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 새로운 꿈"이라고.....

○ 혈우병에 대해 사회에 알리고 싶다.

환우회의 목적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사회 속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젠 혈우병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병이 되었는데, 아직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혈우병에 대해 그들이 알게 된다면 환자에 대한 오해와 차별이 줄어 들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환자들의 교류입니다.

고민이 생겼거나 어떤 난관에 직면했을 때,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과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다만, 무리하게 교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자발적 참여나 고민을 터놓고 싶을 때 교류에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 고민하고 불안한 채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환자간에 소통하고 서로 응원하고 격려한다면 서로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17년 2월 처음으로 지역 환우회를 개최했습니다. 환우회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혈우병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를 높여서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질병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혈우병 환자인 제가 의사가 되겠다던 꿈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로서, 한 사람의 환자로서 혈우병 환우들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 저의 새로운 꿈입니다.

일본환우의 이야기는....

혈우병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보지 '에코'에 게재된 기고문이다. '에코'는 일본 바이엘약품(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혈우사회 공헌프로그램 중 한 가지이다.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 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조은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헤모필리아 라이프  |  등록번호 서울아02245  |  등록일 2012-08-31  |  대표 박천욱  |  편집인 김태일 박필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유성연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205(가산동 470-8, 케이씨씨 웰츠배리 604호)  |  02)6111-8255
업무국 :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27길 25  |  전화 02-535-6474  |  문의 및 제보 hemo@hemophilia.co.kr
Copyright © 2012 헤모필리아 라이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