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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우리 모두 혈우사회 가족 구성원'이라고 하면서도…소송합의, 효과적인 상호보완 방법은 없을까?
김승근 주필  |  hemo@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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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5  0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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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슈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모든 이슈가 코로나19의 블랙홀에 빨려들어 가고 국민적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매 시간 방송되는 뉴스는 첫머리부터 앵커의 클로징 멘트까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마무리된다.

혈우사회에서도 코로나의 영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회 모임도 속속히 취소되고 있으며 혈우병 최대의 빅뉴스인 신약 출시도 예상보다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면서도 아직 식지 않는 혈우사회의 이슈가 있다면 그것은 ‘HCV소송’일 것이다.

대법에서 파기환송되면서 다시 고법 재판부로 넘어온 혈우병 환자들의 HCV감염사태, 벌써 15년을 훌쩍 넘어 20년을 바라보고 있는 소송사건이다. 왜 이렇게 이 사건은 오랫동안 재판부에 머물러 있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치 홍역 앓듯 OECD선진국들도 혈우병 HCV 감염사태를 겪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마무리를 하고 신의약 개념의 혈우병 치료에 매진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는 유독,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몇 해 전만해도 원고와 피고 간 ‘합의’의 물살이 급부상하는 듯해 보였지만 설왕설레 이야기만 무성했지 마무리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서울고등법원에 묶였있는 혈우병 환자들의 겨울이 또 한 번 지나가고 있다.

◇ 어찌되었건 마무리가 되어야,
새로운 시대로의 발걸음을 떼지 않겠는가 말이다

타협,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원고와 피고의 자기주장 ‘내려놓기’가 필요해 보인다. 오랜 시간 지나오면서 명분이라는 건 이미 포장지에 불과해졌다. 그 포장지를 벗기고 내용물을 꺼내어야 할 시기이다. 물론 원고도 그 나름대로 분노의 심지가 꺼지지 않았고, 피고 그 또한 억울한 점이 없지 않다.

아울러 환자들이 강하게 주장했던 ‘책임의 주체’ 범위에서 ‘대한민국’과 ‘대한적십자사’가 빠진 것은 원고, 피고 모두 분노할만하다.

혈우병 소송과 관련된 외국사례에서도 해당국가가 ‘혈액관리의 책임이 없다'라고 판결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대법 판결에서 ‘대한민국’은 책임의 범위에서 배제됐다. 그러다보니 합의를 이끄는 방법이 더욱 어려워진 모양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원고와 피고는 합의를 이끌어 보자는 취지로 몇 차례의 의견교환이 있었다. 그러나 본론을 펼쳐 보기도 전에 서론에서부터 입장차가 크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더구나 보상(배상)에 대한 범위 차이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합의’에 의지가 있다면 원고와 피고는 자신의 무게 추로 저울질하는 그 숫자의 크기에는 미련을 버리고 내려놓음이 필요해 보인다. 합의라는 것은 내 주장만 어필하는게 아니라 남의 주장을 듣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 “내가 가지고 있는 잣대로 길이를 맞추자”?

문명사회에서 도량형이 통일되기 전, 서로 셈법이 달랐다. 무게 추도 달랐고 거리를 재는 줄자의 길이도 달랐다. 그러기에 이 부분부터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듯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을 소송에 대비해 본다면 원고와 피고는 현재 도구의 합의를 이끌지 못했기에 무게나 길이를 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도구의 표준화와 선택이 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순천향대병원의 잣대와, 한양대병원의 잣대 중 기준점이 필요한 것이다. 일부 환자는 순천향대병원의 기준으로 도구를 삼았고 일부 환자는 한양대병원의 기준을 도구로 삼아 각기 그 무게와 길이를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여기서부터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게 됐다.

정리하자면, 10여 년 전의 의학적 소견을 반영한 순천향대병원의 HCV감염 보상기준과, 최근 의학적 소견을 반영한 한양대병원의 보상기준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일부 환자는 순천향대병원에서, 일부환자는 한양대병원에서 각기 다른 신체감정을 받음). 이 부분부터가 서로 기준점의 차이를 발생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당연히 원고입장에서는 과거 시점의 순천향대병원 기준을 근거로, 피고입장에서는 현재 시점의 한양대병원 기준을 근거로 하여 접근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판부도 이 부분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환자인데 누구는 과거의 기준으로, 누구는 현재의 기준으로 보상할 것인가 말이다.

당초 한 곳 병원에서만 신체감정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어찌되었건 원고측 대리인과 피고측 대리인은 순천향대병원 뿐 아니라 한양대병원에서의 신체감정을 합의하여 진행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난해한 상황이 발생된 것이 아니겠는가? 결과론적이지만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어 가고 해결기미는 더욱 감감해진 상황이 된 것 같다.

◇ 판결조차 예상하기 어렵다.
어쩌면 원고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즉 과거 대법에서의 ‘환자 일부승소’에 대한 해석인데, 깊이 있게 살펴보면 ‘일부’라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모든 결과가 원고에게만 유리하게 해석되어 판결 날 것이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일부는 승소할 수 있지만, 반면 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원고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공통된 특정 법리(법적 다툼)에 대해 그러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최악의 상태에서는 일부 환자들은 ‘패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환자에게는 십 수 년의 법적투쟁이 무의미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원고들도 환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피고측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법에서 보장되는 이자부분도 적지 않다. 이미 첫 소송으로부터 시작된 지연이자만 해도 보상(배상)금의 두 배에 이른다. 그나마 ‘원고와의 합의로 잘 마무리 되었다’라며 향후 미래지향적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떠나 기업이미지에 대한 손실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낙인’ 효과가 그것인데 판결로 인해 ‘가해기업’으로 남게 되면 지우기 힘든 전과가 남게 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기에 원고와 피고는 대승적으로 합의를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피고입장에서는 상처뿐인 승리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즉 합의에 필요한 비용이 절대적으로 크다면 아무리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합의를 이룰 수 없다. 차라리 전과를 안고서라도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점을 원고들이 잘 판단해야 한다.

◇ 그렇다면 효과적인 상호보완 방법은 없을까?

머리를 맞대면 아이디어는 적지 않을 것이다. 비용적인 접근방법으로 본다면 법적 책임비용은 최소화로 하되 사회적 기부(환원)차원의 비용을 높이는 방법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예컨대 향후 치료비의 지원보장이나 사보험의 도네이션, 또는 그 유사한 방법으로의 접근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원고 입장에서도 단순하게 이번 소송에 의한 결과보다는 미래의 안정적인 치료확보가 우선되는 것이 더욱 유리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치 앞만 바라본다면 원고든 피고든 법적다툼의 끝이 보이지 않지만 조금 멀리 바라본다면 합의에 대한 결과도출이 막연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도 이번 한치 앞 소송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미래의 지속가능한 혈우사회 가족이라는 점으로 보고 접근해 본다면 지금 당장의 손해가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결론을 말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혈우사회 구성원이라고 말해온 것을 그 말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와 기업과 의료진이 혈우사회의 커다란 범위를 함께 공유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선순환되는 것처럼 그런 모습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우리 모두 혈우사회 구성원이라고 하면서도 행동이 그러하지 않으면 스스로 이율배반하는 것이고 이중잣대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함께 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다. 우리 가족 중에 박차고 먼저 나가지 않는 이상 떠밀어내어서야 되겠는가? 기업은 환자를 ‘무한하게’ 안아야하고 환자는 기업의 ‘소중함’, ‘중대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이 지금 바로 서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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