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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사회의 마에스트로는?거대한 톱니바퀴를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김승근 기자  |  hemo@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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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9  04: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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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분야에서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을 가리켜 마에스트로 또는 거장, 장인 등으로 말한다. 흔히 명연주자나 명장을 그렇게 부른다.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의 호칭으로 더 익숙하다.

마에스트로는 특정 집단에서의 절대자 역할을 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도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에 맞춰 연주를 해야 한다. 첼로 연주가의 독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마에스트로의 손짓을 거스를 수 없다.

가정에서도 아버지(요즘은 어머니의 위치가 매우 높아졌지만)의 결정은 온 가족이 따라야 하는 절대자의 선택이다. 아버지께서 “다음 달에 우리 이사 간다”라고 말하시면 엄마 누나 언니 동생 등 온 식구들은 이삿짐을 챙겨야 한다. ‘이 결정이 올바른 것인가?’라고 물어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항상 올바른 결정’을 하시기 때문이라는 신뢰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여야간 혼돈 속 정치나, 노사간 분쟁도 법 앞에 모든 것이 마무리 된다. 이처럼 우리 일반사회에서 법은 마에스트로이다. 이러한 강력한 파워는 너와 나, 즉 우리를 보호하고 더욱 나은 세상으로 이끈다는 무한한 신뢰를 담보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사회는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고 거대한 톱니바퀴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혈우병, 우리 혈우사회에서 마에스트로는 누구인가? 혈우재단일까? 코헴회일까? 아니면 의사일까? ‘환자’에게 있어서 ‘의사’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환자인 나보다 내 몸 컨디션을 더 잘 알고 있고, 또한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상 혈우사회 현실은 어떠한가? 환자들은 적어도 치료에 관한한 의사를 절대자로 신뢰해야하는데도 그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정치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으로부터 오해나 곡해로 이어지는 경향 등이 적지 않은 듯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소통의 부족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혈우사회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기본적인 의료복지와 선진화된 치료라는 것 이면(裡面)을 살펴본다면, 이런 당위성만으로는 혈우사회의 선진화된 치료조건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다.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한 부분 중 재정문제도 매우 큰 고려 대상이다. 재정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원을 최적화해야 한다. 이러한 재정자원은, 때론 소수의 환자보다 다수의 환자 치료에 사용해야 할 필요도 있다. 즉 때에 따라서는 더 많은 환자들을 위해 의료장비를 개선해야 할 필요도 있고 인력을 충원해야 할 이유도 있다. 이러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공적 재원확보와 민간 재원확보도 필요하다. 재정은 풍선의 원리이다. 한쪽이 팽창하면 다른 한쪽은 수축하게 된다.

더구나 특정집단을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것도 올바른 선택은 아니다. 예컨대 A를 선택하면서 B를 포기해야 하는 결과가 예상된다면 이것도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며, 생각하며 결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합의라는 것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합의를 이끄는 방법은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본 만큼 상대도 알고,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설득이라는 과정이다. 그동안 우리 혈우사회에서는 이런 설득과정이 얼마나 있었는지 되짚어 보자.

후진국형 리더들은 자신의 효율적인 지식을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는 판단 하에 독재적 국가를 이끌고 단기적으로 급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과거 우리 혈우사회도 이렇게 성장해 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민주적인 소통에서 답을 찾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혈우사회는 더이상 특정 개인의 리더십으로 이끌어 갈수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고 그럴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지금은 집단지성이 필요하고 민주적인 합의와 소통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정례적인 소통창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코헴회 회장과 국장, 그리고 운영위 1~2명으로 구성된 환자 목소리 대변인단을 구성하고, 이들이 혈우재단의 이사장, 상근이사, 의료원장 등과 정례적으로 소통한다면 혈우사회가 더욱 올바르고 빠르게 발전 할 수 있다고 본다.

무거운 주제를 나누는 창구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상대가 바라보고 있는 시점을 서로 나누면서 소통을 이어간다면 예상치 못하는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즉, 미래 혈우사회의 마에스트로는 개인이 아니라 이런 민주적 소통기구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라 혈우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화의 창구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소통창구에서 무엇을 합의한다거나 결정을 하는, 그런 기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각자의 소속 기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코헴회는 대의원회의가 있고, 혈우재단은 이사회가 있다. 따라서 소통기구는 그 어떠한 결정권한을 갖게 된다면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집담회에서는 단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며 향후 불확실성을 낮추고자 하는 자리이다. 아무리 바쁜 업무가 있다고 해도 이런 자리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동차 서킷에서 피트인을 갖는다.

피트인에서 타이어를 바꾸고 다시 주행한다. 몇 백분의 일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왜 피트인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피트인이 우리 혈우사회의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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