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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와의 싸움
김승근 주필  |  hemo@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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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1  10: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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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인들의 정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은 ‘분노’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내가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한 일이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간 경우,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배신을 당하게 된 경우에는 깊은 분노의 감정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소소하게는, 난폭 운전을 하는 운전자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하거나, 모처럼의 산책에서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을 마주치는 경우도 욱하고 올라오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이러한 개인적인 삶에서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일 외에도, 최근 몇 개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전 국민을 분노케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분노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월 4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단행했는데, 이는 아베 정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명백했다. 온 국민은 과거를 부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큰 분노를 느꼈고, 이는 일본에 대한 규탄과 국민적 일본 불매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지속되던 지난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가 부상하자, 이번에는 엄청난 국민적 분노가 한꺼번에 그에게 쏟아졌다. 정의와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조국 전 장관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그리고 그가 여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체적 진실과 법적 판단을 떠나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국민들, 특히 20, 30대 젊은이들이 큰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조국을 반대하는 이들과 조국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계속 증폭되고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점차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결국 조국 사퇴 카드로 사태를 매듭짓게 되었다.

국민적 분노는 일본 불매운동, 조국 사퇴와 함께 이렇게 사그라드는 것 같았으나, 새로운 불쏘시개를 얻게 되었다. 불매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유니클로가 위안부 할머니를 조롱하는 듯 한 광고를 진행한 것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7월, 불매운동이 오래 가지 못 할 것이라고 한 유니클로 본사 임원의 발언에 분노했는데,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인식과 배려의 부족을 드러내자 또 다시 뜨거운 분노의 감정을 온라인 공간에 쏟아내고 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고, 분노할 만한 일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노가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개인의 삶과 사회적 시스템이 조금이나마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재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 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확립을 앞당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정의롭지 못 한 권력에 대한 분노가 촛불집회로 이어지면서 시민들에 의한 역사적이고 평화적인 권력의 교체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노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요즘 세상에는 분노할 만한 일이 너무도 많고, 분노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은 상당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옆 사람의 분노가 나에게로, 나의 분노가 옆 사람에게로 쉽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요즘의 분노는 언론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집단의 논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 증폭되기도 하는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가 일상화된 요즘에는 우리가 분노와 싸우고 있지는 않은 지 자문하게 된다. 분노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분노를 지혜롭게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잘못된 일에는 당연히 분노를 느끼되, 내가 왜 분노를 느끼는지, 분노의 본질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해보고,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노력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어야 하겠다. 분노가 일시적인 심리적 만족감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의 분노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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