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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첨단치료' 시대, 기타응고인자 질환은?신약 임상은 왜 꼭 8, 9인자에만...
황정식 기자  |  nbkiller@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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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0  17: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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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치료제 개발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반감기가 길어진 롱액팅제제, Anti-TFPI와 항트롬빈 억제기전 등 기존과 다른 지혈전략의 제제, 그리고 유전자 치료까지...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고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는 가운데서도 무언가 허전한 이유는 이 도전들이 모두 8인자와 9인자 결핍질환에만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혈우병'은 8인자, 9인자 결핍만 해당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혈우병의 테두리가 넓은 범위의 '선천적 출혈질환'까지 확대되면서 기타응고인자질환 환우들의 등록률도 높아지고 혈우사회로의 참여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폰빌레브란트인자 결핍질환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나타나고 그 수가 8인자 환우만큼 많다고 알려지는데 등록률은 비교적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환우의 5%로 미미한 수준)

▲ 세계 출혈질환 환자의 인자별 구분 폰빌레브란트 질환(76,114명)은 9인자 혈우병 환자(31,247명)의 두배수가 넘는다. (자료=WFH 2017 글로벌서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 치료제 연구가 8인자와 9인자에만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누가 보더라도 경제적인 이유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로벌 8, 9인자 혈우병치료제 시장의 규모는 현재 선진국 중심으로만 봤을 때 8조원에 달하며 이것을 수많은 회사와 제품군이 나눠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치료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에 먼저 성공할 경우 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폰빌레브란트 질환과 기타응고인자 질환 환우들은 아직까지 혈장유래제제를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국내 상황은?

그나마도 우리나라 기타응고인자 질환 환우들은 상황이 더 안 좋습니다.

지방 광역시에 살고 있는 임모 군(10세)은 13개의 혈액응고인자 중 10번 응고인자 결핍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1번, 5번, 7번, 10번 등의 희귀인자결핍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희소하며, 특히 10번인자 결핍은 우리나라에 단 두 명만이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장 드문 경우입니다.

임 군은 유아기 때 뇌출혈을 겪고 지혈이 잘 되지 않아 10번인자 결핍증을 진단받게 되었고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전전하다가 궁여지책으로 혈우병 항체환우의 치료에 쓰이는 혈장유래 복합제제 '훼이바'를 투여했다가 겨우 지혈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혈장유래 복합제제의 특성상 균일하진 않지만 소량의 10인자가 포함되어 있어 임군의 지혈을 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훼이바는 8, 9인자 항체환우에게만 사용하도록 건강보험이 적용돼있어 임군이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약값을 비보험으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 치료를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건강보험 적용범위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통상 약품생산회사가 그 질환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그 데이터를 축적해 보건당국에 적응증 확대신청을 먼저 넣어야 하는데, 회사 측에서는 '해외에서도 사례가 없어 임 군의 사례만으로 적응증을 확대할 수는 없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새로운 희망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한 제약회사에서 2015년 코어가덱스(Coagadex)라는 10인자결핍 전문치료제를 출시한 것이죠. 극소수의 환우를 위한 약품이긴 해도 국제 혈우사회 안에선 적극적인 도입노력이 이어졌고, 이 제제를 이용한 10인자 환우 치료사례도 논문으로 속속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로의 도입은 아직까지 요원한 현실입니다. 가족과 주치의, 한국코헴회는 10인자 전문치료제의 존재여부와 FDA자료를 바탕으로 한 안전성 검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단 두 명의 환자를 위해 정식 수입통관 절차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긴급의약품 도입'의 키를 쥔 희귀의약품센터와 식약처, 복지부와 심평원은 서로 주체로서의 역할을 떠넘기면서 환자가족만 이리저리 문을 두드리고 다니는 혼란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다른 예로, 7인자 환우들은 첨단 치료제라고 할 수 있는 '노보세븐'을 건강보험 적용받아 사용할 수 있지만 정부의 희귀질환의료비지원제도(국고지원)에서 소득재산 수준이 높아 탈락할 경우, 막대한 선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8, 9인자 환우들도 국고지원에서 제외될 경우 큰 본인부담금이 발생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7인자 치료제의 단가가 워낙 높아 나중에 일부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지출 본인부담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약을 제 때 쓸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같이 노보세븐을 쓰는 항체환우들의 경우에도 과하게 고액의 치료비가 지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고지원 심사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나 7인자는 그 사각지대에 있는 현실입니다.

신약개발, 기타응고인자 질환과 함께 갈 수 없나

물론, 가장 많이 연구되어있고 잘 알려진 부분부터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제약회사들이 당연히 선택, 집중해야 할 방향이라고 인정됩니다. 그러나 폰빌레브란트 질환이 9인자 인구를 넘어서 8인자만큼 많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는 걸 감안했을 때, '전통적 혈우병'에 몰두하는 현재 회사들의 개발 우선순위는 환우들의 고통보다도 가장 많은 재정이 투여되고 있는 분야를 먼저 점령한다는 '사업가'로서의 시각을 더 잘 드러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천한 지식이지만, 응고인자의 차원을 넘어 또 다른 지혈기전을 활용해 혈액응고를 돕는 치료제라면 당연히 8, 9인자 뿐 아니라 기타응고인자 질환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기술인데도 이에 대한 임상시험 조차 도전하지 않는 것은 기타응고인자 질환 환우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것에 다름없지 않을까요?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기 전에 그로 인해 더 숨죽여야 하는 소수를 함께 손잡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과 사회적 여건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환자단체, 재단 등 출혈질환 공동체 안에서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지원을 실천해 동등한 수준의 복지를 구현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열 사람이 그늘에 들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헤모라이프 황정식 기자 / 코헴 소식지 '우리코헴'과 컨텐츠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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