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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에 다녀왔습니다"나의 유전자치료 '탈락기'
김태일 기자  |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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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4  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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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치료 이후의 응고인자 상승 그래프가 꼭 우주로 향하는 999호 철로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건 임상시험 탈락이 주는 아쉬움 때문일까?

이제는 고전이 돼버린 만화영화 '은하철도999'에서 엄마잃은 소년 주인공 철이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계몸을 무료로 준다는 별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난다. 엄마를 꼭 닮은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지금 보면 병맛 그림체(특히 철이의 안면구조)에 움직임도 어색하고 여성 캐릭터는 다 비슷하게 생긴데다(그래도 메텔은 너무나 아름답다) 웜홀도 없이 은하들 사이를 어쩌면 그렇게 빠르게 이동하는지 전혀 과학적이지 않기까지 하지만, 열 살 즈음에나 마흔이 된 지금도 그 작품에 빠져드는 건 아마 이야기에 담긴 철학과 소년의 간절한 꿈에 동의할 수밖에 없어서 인 것 같다. 거기다 매 화가 끝날 때 낮게 깔리는 중년 성우(김용식)의 "철이는 다시 생각해 본다..." 식의 나레이션은 이 애니메이션의 백미다.

얼마 전, 혈우병 유전자치료 임상시험을 위한 적합성 검사를 받았다.

유전자치료는 기존의 응고인자제제를 투여해 출혈을 막거나 예방하는 방식의 치료를 벗어나, 응고인자를 정상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유전자를 체내에 안착시켜 장기간 출혈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방식의 혈우병 치료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연구해 오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최근에 와서야 안정적인 성과를 보이며 거의 '엔드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3상 임상시험이 진행중이다. 해외에서는 52주 동안(진행중) 응고인자 수치가 높게 유지되는 공식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고 연구소에 따라서는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환자 데이터도 축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유전자치료 임상시험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단계의 유전자치료는 체내의 응고인자 생성 유전자를 근본적으로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유전자를 특정 '전달물질'에 심어 정맥주사를 통해 (응고인자를 주로 생산하는) 간에 침투시키고 간에서 정상적으로 응고인자를 생산하도록 하는, 소위 ex vivo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 '전달물질'로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가 이용되고 있으며 임상시험에서 일단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AAV는 인체에 해가 적고 변이성이 작아 여러 유전자치료의 전달물질로 주목받고 있는데, 다만 자연계에 존재하던 바이러스이다보니 이것에 대한 항체를 가진 사람이 인구의 약 30% 정도 되고 이들은 치료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적을 것이 예상되어 AAV를 활용한 유전자치료 대상자는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내 적합성 검사 결과는... '부적합'이었다. 혈액에서 AAV 항체가 검출된 것이다. 30% 안에 들어간다는 거다. 1만 명 중에 한 명 있다는 혈우병을 가진 것은 별로 신기하지 않은데 1/3 확률에 포함됐다는 이번 검사결과는 좀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담 좀 섞어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시련이!" 같은 드라마 대사도 떠올랐다. 하지만 재검사를 요구할 수도, 억지를 부려 시험을 강행할 수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치료에도 만족하지 않냐',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며 위로? 또는 몸 사릴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욕심이 난다. 무슨 욕심이냐면, 선진치료를 체험한다는 자부심이 아니고, 현재 가치로 몇 억 하는 약물을 몸에 장착한다는 사이버틱한 발상도 아니며, 후배들에게 좋은 세상을 열어주고픈 이타심도 솔직히는 아니다.

그것은 언제 있을지 모를 갑작스런 뇌출혈이나 장출혈로부터 내 몸을 조금이나마 지키고 싶은 욕심이다. 세상과 함께 커 나가는 세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 조금씩 더 커지는 욕심이다.

어쨌거나 현 단계의 유전자치료는 깨끗하게 포기해야 했지만 아직 희망은 많다. AAV를 없애거나 컨트롤한 후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도 고려되고 있고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를 전달물질로 이용한 유전자치료도 시도되고 있다. 떠들썩한 '인보사' 사태 같은 일들로 인해 유전자치료 자체에 대한 의지와 관심까지 뿌리 뽑히지만 않는다면 혈우사회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스포일러가 돼서 좀 그렇지만, 안드로메다(요새 드립에 쓰이는 '멘탈이 안드로메다에 갔다'는 표현은 아마 이 만화 땜에 생긴 듯)에 간 철이는 원하던 기계몸을 얻지 못한다. 아니 갖지 않는다. 기계행성의 음모를 파괴하고 대신 유한한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으며 지구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어쩌면 우리 혈우사회가 꿈꾸는 건, 스러지지 않는 기계몸이 아니라 한계를 알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는 것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 한국코헴회 소식지 '우리코헴' 컨텐츠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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