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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본인이 혈우병에 대해 알아야 몸 관리 할 수 있어”[릴레이 인터뷰] 한국혈우재단에서 근무하는 우종완 대리
황정식 기자  |  nbkiller@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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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2  20: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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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에 제대로 대처하여 2차적인 질환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도움? 제대로 된 시스템? 효과 좋은 약?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이 자기의 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한국혈우재단 복지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종완 대리는 많은 환자들을 만나보면서 혈우 환우가 혈우병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김종필님 - 김수섭 아버님 - 김선경 복지사 - 김진규님 - 김연수님 - 장영진님 - 이강안님 - 김대봉님 - 이상훈님 - 정재민님 - 김근우님 - 박정서 회장 - 알렌 웨일 총재 - 김민지님 – 박상진님 – 우종완님

▲ "혈우 환자는 몸 건강 관리가 최우선입니다." - 릴레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우종완씨

유기자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종완 : 제 이름은 우종완이구요, 아시다시피 혈우재단에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고, 혈우병 A형이고 1% 미만 중증입니다. 사는 곳은 서울이고 혼자 살고 있어요. 그리고 가족관계는 현재 아버님 한 분 계시고, 저희 형이 한 분이 계시고. 막내가 있었는데 막내도 혈우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십오년 전쯤 뭐가 바쁜지 먼저 가서 지금은 형하고 저하고만 있고요, 우리 형은 혈우병이 아닙니다.

유기자 : 지금 재단에서 본인이 맡고 있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신지요?

우종완 : 복지기획팀이라고 가장 어려운 우리 환우들, 그러니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찾아다니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맡고 있는 일은 우리 환우들 전체적으로 건강이라든가 아니면 이 환우들이 일을 하고 싶다던가 아니면 다른 지원을 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든지 그런 것들을 찾아서 연결도 해드리는 등 필요에 맞춰서 도와드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복지 관련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유기자 : 한국혈우재단이 국내 혈우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종완 : 쉽게 말씀드리면 대내외적으로 살림을 맡아본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특히 복지(환우들에 대한 건강, 치료 방법, 복지 등등)에 관한 것들, 지원 같은 부분들을 전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우리 환우들에게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재단이라는 것이죠. 지금 이 시점이 제가 느끼기에는 변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러니깐 처방 횟수도 바뀌고 혈우병 관련하여 다양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데 저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제자리에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새로운 사업을 하고는 싶은데 이거다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그렇게 일을 해 왔고 앞으로도 좀 더 폭넓게 환우들이 원하는 부분을 찾아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우종완씨는 한국혈우재단 복지기획팀에서 다양한 혈우 환우의 복지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유기자 : 그렇다면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종완 :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죠. 과거에는 치료제에 의존했던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치료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과거의 측면에서 보면 약만 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약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보거든요. 이 부분을 해결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죠. 약은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2차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재활이라든가 물리치료, 수술, 이런 부분들도 병행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항상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가 나아지면 다른 한 가지가 아쉽고, 더 큰 것을 원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어떤 환경적인 요소가 더 나아지고 좋아졌다라고 하더라도 환자들이 원하는 것들은 더 큰 것 같아요. 여기 이 자리에서 선뜻 무언가를 해봐야 하겠다라는 것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 그리고 우리 환우들이 더 원하는 것들을 먼저 파악 하고 그런 부분들에 힘을 써야 되지 않을까, 또 좀 더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죠.

유기자 : 개인적으로 가지고 계신 아이디어가 있다면요?

우종완 : 매년 저희들이 사업계획을 내죠. 그런 것들 가운데 새롭게 채택돼서 추진하기도 하고 합니다. 제가 잠시 정지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혈우병과 관련된 내용을 얻기 위해서는 재단이나 병원에 꼭 방문해야 했었는데, 요즘은 여러 다른 병원에서도 처방이 가능하고, 책자라든가 인터넷을 통한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보는 다방면으로 얻을 수 있는 데 정작 일부 청년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리 청년 환우들이 어떤 치료를 해 왔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심지어 재단에 와서 치료받는 친구들 중에서도 본인이 어떤 약을 쓰는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환우가 있을 정도니깐요. 저는 그 원인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부모 당신으로 인해 혈우병이 생겼다고 생각하셔서 많이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계속 도움만 주시고 자립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으시는 것 같아요. 결국 부모님들이 계속 와서 처방 받으시고 상담 받고 하니 정작 본인들은 혈우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죠. 이유를 물어보면 보통 바쁘다는 이유로 답하곤 합니다.

▲ 그는 여가 시간에 복잡한 도심을 떠나 낚시를 떠난다고 말했다.

유기자 : 무언가 소통의 창구가 좁아지는 듯한 건가요?

우종완 : 그렇죠. 그러니까 정작 본인들이 알고 배우고 해야 되는 부분들을 부모님이 들어서 전달해주는 그 과정에서도 빠지는 것이 있고 또. 더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정보의 전달이 잘 안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정작 우리 환우들이 급하게 필요로 할 때, 예를 들어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자기가 어떤 약을 맞고 있는지 모른다면 매우 곤란해집니다. 한가지 사례를 이야기 하자면 깜짝 놀라게 되실 겁니다. 모 환우가 다쳐서 어느 병원 응급실에 와 있는데 본인이 맞는 약을 알려달라는 경우죠.

유기자 : 그 정도로 모르는 경우도 있나요?

우종완 : 예. 자세히 알려드리고 싶어도 전화상으로 긴급하게 처리해야 하니까 약 케이스가 무슨 색이냐? 크냐 작냐? 이렇게 물어보다 보면 어떤 약을 맞는지 알게 되는 거죠. 이렇게 본인이 맞고 있는 약도 몰라서 문의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과거에는 환자 본인이 잘 알지 못하면 몸이 힘들어지니까, 몸 관리가 되지 않으니까 여기저기 물어보고 파고드는데, 지금은 부모님이 그것을 대신해주니까 모르는 환우들이 있습니다.

▲ "아직 혈우병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잘 모르는 환우들이 있어요."

유기자 : 지금은 거점 병원의 확보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우종완 : 글쎄요, 그 문제는 단편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약제가 많이 들어와 있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혈우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나라도 없을 거구요. 몇몇 외국에서는 한 두 가지 약재만 쓰는 나라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환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무슨 약이 있는지도 모르는 환자가 있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느껴야 하는 부분들에서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혈우 사회는 거의 모든 것이 다 갖춰졌다고 생각해요. 치료 환경이라든가, 치료제, 처방 등이 말이죠. 하지만 잘 모른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보통 어린 아이와 부모님이 같이 오시면 부모님은 아이들 챙겨주기에 바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는 “어머니가 천년만년 사실 거라면 그렇게 해주셔도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안 계시면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죠. 다른 아이들처럼 제때 주사만 맞추고 다칠까봐 너무 걱정하면서 케어에 신경 쓰지 마시라는 것이죠. 자가주사가 되기 전까지 신경써서 주면서 출혈 시 신속한 처치(응고제제 투여 및 물리치료)만 신경써서 해주면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유기자 : 요즘 아이들은 빠르게 성숙해지잖아요.

우종완 : 예, 예전에 어떤 강의에서 들은 내용인데요. 초등학생부터 부모가 아니라 옆집 아줌마, 아저씨처럼 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뒤로 한발 물러서서 자식을 보게 되면 얼굴만 보이던 것이 아이의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불안해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제 자리로 돌아오게끔 되어 있다고 해요. 부모님이 너무 잡아놓으려고 하니까 튕겨 나가려고 하는 것이지 그렇더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거든요. 저도 과거에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한 두 살 더 먹다 보니까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남들도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다음부터는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우리 환우들에게 어차피 아플거면 해보고 아프라고 말합니다.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운동하고 싶으면 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그렇게 하라고 하죠. 이런 이야기 선생님이 들으시면 혼나는데(웃음).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조건을 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예방을 해왔다면 세 번, 네 번 예방을 하고 출혈이 있으면 또 맞고, 그런 식으로 행동하라고요. 어차피 아이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다 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럴 바에야 부모님이 아예 틀을 만들어 주시고 주사를 놓아주면서 예방이 생활이라는 것을 본인이 느낄 수 있게끔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 환우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즐거운 것이 사실!

유기자 : 주제를 좀 바꿔서요, 주말에는 주로 뭘 하세요?

우종완 : 주말에 많은 것들을 합니다. 예전에는 불금에 친구들 만나고 돌아다니고 그랬는데 요즘은 낚시를 합니다. 같은 우리 환우 형님분들과 같이 다니고 있지요.

유기자 : 1박 2일로요?

우종완 : 네. 주로 낚시터로 많이 갑니다. 예전에 다리가 좀 괜찮았을 때에는 계곡이나 강, 아니면 수풀이 우거진 곳을 찾아가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무서운 밤을 지새우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곳에 가질 못하니까 관리형 저수지 같은 곳으로 자주 갑니다. 낚시하다가 피곤하면 방에 들어가서 쉬면 되니까요. 주로 가까운 곳, 경기도 인근에서 합니다.

유기자 : 본인의 인생의 제일 전성기는 언제였다고 생각하세요?

우종완 : 딱히 뭐 전성기라고 할 것도 없는데 과거에 한참 좀 일적으로, 건강적으로 좋았을 시기가 제일 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때에는 디자인 쪽에서 일을 했었거든요. 광고 디자인을 하는 업체에서 일했습니다. 광고 디자인 쪽으로 소위 하는 말로 잘 나갔었고. 대형 광고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었고, 내가 제작했던 디자인이 시중에 나오기도 했었고요.

유기자 : 그런데 이후에 왜 그만두신 거예요?

우종완 : 한참 좋을 때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 하시잖아요. ‘네가 지금 너무 잘 나갈 때 한 번 쉬어라’라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안 들었죠. 일을 밀어 붙이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펑펑 터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손해도 보고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다행인 것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업체 사장님들 중에 선배들이 있어 인건비도 안받으시면서 도와주셨죠.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다 메꿨습니다. 금전적으로 크게 손해본 것은 없었지만 돈이라는 것으로 인해 믿었던 사람들을 잃고 배신감도 얻고요. 그래서 다시는 그림 그리지 않겠다라고 다짐하고 디자인 업계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는거에요. 좀 활발하게 움직이는 일을 찾기를 원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영업도 뛰어보고 택시회사 배차실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 3~4년 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 재단에서 복지팀이 생긴다라고 해서 오게 된 것이죠. 그 이후로 저도 많이 바뀌었고 일도 잘 맞아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유기자 : 혈우재단 초창기때에도 많은 청년들과 어울리셨을 것 같은데 어머니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종완 : 많이 계시죠. 그때는 청년들보다는 어머님들 쪽, 그러니까 경희대병원부터 세브란스병원 클리닉까지 재단이 설립되기 전까지 재단 만들어 달라고 복지부 가서 싸우기도 하시고 여러 일들을 하시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재단 설립 후에도 많이 활동을 하셨죠.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에는 배우자가 모임의 일을 보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대외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셨죠. 대신 한마음회 어머님들 모임에서 자문 역할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같은 구에 거주하는 환우가 아프다고 연락을 하면 우리 어머니가 새벽이고 낮이고 약 챙겨서 택시타고 가서 주사 놔주고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간호사 출신이셨거든요. 그렇게 활동적이셨던 분이었습니다.

▲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힘들었을 때 다른 어머니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기자 :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도 청년분들보다는 다른 어머니들로부터 많이 이야기를 들으셨겠네요.

우종완 : 네, 그래서 어머니들이 저 볼 때마다, 재단에 오시면 저를 보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방황을 했었죠.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한 1년 좀 넘게요. 재단이 아니었다면 아마 잘려도 12번은 더 잘렸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많이 잡아주시는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잘 적응해서 지금은 잘 버티고 있지요.

유기자 : 혈우병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떤 점이 있었나요?

우종완 : 저는 혈우병이 있다고 해서 누구를 원망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부모님을 원망해본 적도 없고, 우리 형제들 원망해본 적도 없고, 내 주변 사람들 원망해본 적도 없고. 그런데 아쉬운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아쉽습니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에는 산 타는 것을 되게 좋아했어요. 지리산 종주도 하고, 운동도 엄청 많이 하고 태권도, 합기도 등등 하고 싶은 운동은 거의 다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행 다니는 거 좋아서 여행도 다니고, 산에 다니고, 운동하고, 축구하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 관리가 잘 안 되다 보니까 못하게 되잖아요. 그게 제일 아쉽습니다. 화도 나구요. 그런 것들 외에는 딱히 혈우병 때문에라는 것은 없어요. 혈우 환자들은 다 똑같을 거예요. 생활하는 것이 다 힘드니까요. 혈우병 아니었으면 더 잘했겠지,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유기자 : 아까 이 일이 적성에 맞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재단 일을 하시면서 나름대로 재미있거나 아니면 좋은 경험하신 것이 있다면요?

우종완 :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은 다 내 적성에 맞아서 했던 일입니다. 광고 디자인도 그렇고. 내가 혈우병 환자고 재단이라서 잘 맞는다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잘 맞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참 많이 있죠. 예전에 우리 환우들을 대기업에 취업을 시켜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 뿌듯했죠. 그리고 거동이 많이 힘드신 분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서 치료 받게 해드리고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참 뿌듯했습니다.

저 친구는 일하기 힘들 것 같은데라고 걱정했던 친구가 지금 나보다 더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해서 성공한 모습들이라든지요. 꼭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넉넉해져 성공했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거죠. 내가 그 친구의 집에 처음 갔을 때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던 친구였는데, 그래도 한참 대기업 시험보고 할 때여서 한 번 해보자 했더니 2차에서 붙었더랬죠. 그 이후로 그 친구를 보러 갈 때마다 내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 외모도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니다가 이젠 패셔니스트가 다 됐습니다. 그렇게 점점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더군요. 또, 이런 사회의 경험을 아프면 얻지 못하게 되니까 예방도 하며 열심히 관리도 한다고 합니다.

▲ 시간을 훨씬 초과해서 진행된 인터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마무리했다.

유기자 : 다른 특별한 활동이라던가 다른 관심사가 있으신지요?

황기자 : 수술해야죠.

우종완 : 수술이 관심사죠. 항상 이렇게 떠들고 다녀서 남들이 더 잘 알 거예요. 그런데 진짜 수술 해야돼요. 지금은 진통제로 버티는데 컨디션 안 좋을 때에는 진짜 너무 안 좋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또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거죠. 늦깎이로 전도 받아서 갔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군요. 교회에도 열심히 다녀야 하구요.

유기자 : 우리 환우들에게 한말씀 해주시고, 다음 릴레이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우종완 : 우리 환우들에게 제일 바라고 싶은 것은 본인들이 건강관리에 많이 신경을 좀 더 써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잘 하시는 분도 있으시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을 못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좀 더 폭넓게 치료 환경에 대해서 한발짝 다가서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건강을 챙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다음 릴레이 주자로 추천 드릴 분은 문경에 거주하고 계신 천해수님입니다. 그분도 건강관리에 있어서 과거보다는 현재에 많이 바뀌신 분이시고 열심히 생활하시려고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어떨까 합니다.

유기자, 황기자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종완 : 감사합니다.

간략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려고 했건만,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도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혈우 사회에 오랫동안 몸 담고 있었던만큼 할 이야기도 많고, 겪었던 일도 많아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도 더 좋은 세상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으니 오랫동안 같이할 수 있는 사이로 남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 하였다.

[헤모라이프 황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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