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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진단, 절망 아닌 선물처럼 이겨내는 이야기 ‘29가지 선물’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이켜 보는 시간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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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8  03: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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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혈우사회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어떤 일들이 우리 혈우사회에 화려한 꽃이 되어 피어있을까? 자칫, 나의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까지 가꿔왔던 ‘우리’라는 존재를 망가지게 하는 건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우리 혈우사회에 선물을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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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의 시간, 29가지 선물”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줄리 앤 줄리아(Julie&Julia.2009)’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무력감에 시달리는 여주인공 줄리가 나온다(아참, 이번 글은 이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다가 ‘줄리아 차일드’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여성 요리사의 레시피 책을 발견하게 되고 그 레시피를 똑같이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짜면서 시작된다.

▲ 영화 <줄리 & 줄리아 Julie & Julia> 2009년 작품/ 드라마 미국 122분 2009 .12.10 개봉/ 감독:노라 애프론/ 출연:메릴 스트립(줄리아 차일드)

줄리는 한 가지 특별한 자신만의 조건을 건다. 그것은 바로 책 속에 나온 524개의 레시피를 ‘365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해내기!’라는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자신의 블로그에 그 목표를 카운팅하기 시작한다. 자, 그리고 카운팅이 넘어가고 있는 순간순간, 이야기는 그저 레시피 북을 따라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넘어 더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한다.

제한된 시간, 제한된 목표. 365라는 숫자와 524라는 숫자. 어떻게 해야 365일 뒤에 행복하게 ‘목표 달성!’을 외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줄리는 목표를 달성한다. 하루에 두어 개의 요리를 한꺼번에 만드는 나로 있었고, 반대로 슬럼프에 빠지고, 너무 피곤해서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365일이라는 시간과 ‘524 레시피‘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꽤 많다.

누구라도 중간에 슬럼프를 겪을만한 일인데 그 시간 동안 줄리에게 벌어지는 일이 레시피 북 정복하기 말고도 다른 일도 있었을 테니 그 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 며칠을 관둔다 해도, 줄리는 다시 레시피 북에서 오늘 만들어야 하는 일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처음 썼던 ‘목표를 달성해야만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29가지 선물> 나와 당신의 삶을 바꿀/ 저자 카미 워커/ 역자 권은영/ 영림카디널/ 2010.07.25./ 원제 29 gifts

오늘 갑자기 ‘레시피 북’이야기인가 하면, 내가 ‘29일 안에 29가지 선물’을 해야만 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 ‘카미 워커’의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앞서 이야기를 꺼낸 영화 속 ‘줄리’가 ‘아, 오늘은 정말 요리하기 싫은 날인데,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라고 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목표, 그것이 왜 그렇게 사람을 활기차게 하고 의욕이 넘치게 만드는 것일까? 줄리는 블로그에 ‘이런 목표를 내가 해낼 거예요!’라고 올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블로그 독자들은 얼굴조차 모르는 남이니 그저 무시한다고 해도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카미 워커 역시 자신의 병을 검진하고 치유해 줄 상담치료사의 제안에 따라 시작하기는 했지만 희귀병으로 인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환자가 그까짓 약속 하나 지키지 않았다고 머라 할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실제로 카미 역시 처음 그 과제를 받았을 때에는 ‘지금 이 사람이 나한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그게 내 병을 치료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일만은 이뤄내고 말거야.’ 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든, 이미 카운팅은 세어지기 시작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지라도 ‘이것 하나만은 해내고 싶다’라는 의지가 오히려 솟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인생에서 남은 것 중, 어떤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가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 이 책은 카미 워커라는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난치병 진단을 받은 한 여자의 절망을 선물처럼 이겨내는 이야기였다.

“오늘 내 삶 속에서 보이는 가장 큰 다른 점 중 하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내게 말해준다는 것과 나도 역시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가장 먼저 ‘나로 인해 남겨질 것들’과 ‘나로 인해 남을 사람들’, ‘내가 남겨두고 가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삶은 무언가를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지만 막상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 누군가가 내 삶에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통장 안의 잔고? 혹은 내 가족들, 그리고 나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나로 인해 남을 사람과 남겨주고 가고 싶은 것들이라고 말할까?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 내 통장의 잔고라든지, 내가 살아생전 들어 놓았던 보험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가장 나로 인해 남을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내 인생에서 남은 것은 보험금과 통장뿐이야.’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서글픈 인생 같아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이 남는다고 말해야 할까? 나는 내 인생에서 나를 사랑해준 수많은 사람들을 남기고 가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슬프고 미안한 일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내가 떠나고 나서 얼마나 슬퍼하고 힘들어할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그것 역시 옳은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카미의 신경상담사가 말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조금씩, 하루에 한 가지씩 선물하라는 그 말이 아주 쉬운 질문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과제로 받았던 ‘네 인생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라는 과제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버킷 리스트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작성하는 것인데 이것은 선물이 아닌가. 내가 무엇을 주어야 내 소중한 사람이 가장 기뻐하며 나의 죽음을 담담하게, 그리고 내가 준 선물에 담긴 내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줄까?

▲ 하루에 한가지씩 선물해 보면 어떨까? 값 비싼것이 아니라도 좋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카미의 신경상담사가 이 과제를 내어 준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카미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이켜봄과 동시에, 삶의 남은 시간을 절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과 좋은 것을 나누는 기쁨으로 채워주고자 했던 것이었다고 말이다.

고칠 수 없을 희귀병, 살아 있는다 해도 모든 시간들이 병마로 인한 고통과 절망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 환자이다. 다발성 경화증은 시력이 급격하게 저하되기 시작해 보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척추 횡단면의 모든 운동 신경, 감각 신경, 자율신경이 병변에 의해 침범되기 때문에 근육 마비, 감각 증상, 대소변 장애, 성기능 장애 등을 앓으며 날카로운 통증이나 화끈거림이 수시로 느껴진다.

그밖에도 어지러움증이나 운동 불능으로 인한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떨림 증상이나 발음이 부정확해 의사전달 또한 어려워지고 심하면 언어사실까지 올 수도 있다. 이런 증상을 겪으며 행복감을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카미에게는 ‘29가지 새로운 날’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앞으로 28명, 앞으로 27명이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웃음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기 위해 선물 상자 안에 들어가 선물 리본을 상대가 열기를 기다리다가 놀라게 했을 때, 그런 두근거림으로 그녀의 인생을 하루라도 특별하게 채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특별한 날이 29일이나 계속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아닐까?

문득, 내 인생에서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리스트를 떠올려본다. 나는 29가지, 아니 10가지라도 찾아낼 수 있을까?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나의 일부 말이다.

그것이 물질로 된 것이든 아니든, 그리고 좀 더 소중한 선물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당장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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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지난해 4월 20일 나는 <우리는 분노의 세상에 살고 있는가?>라는 칼럼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약 50편의 글을 남기게 됐다. 때론 우리 혈우사회의 희노애락을 녹여 보기도 했고, 때로는 다른 희귀병 환우들의 삶을 생각해 보며 혈우병 환우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투영해 보기도 했다. 환우의 친구로써, 환우의 부모로써, 때론 환우의 치료자로써 혈우환우들와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는 기회도 되었다. 이제 그 대장정의 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오랫동안 써내려갔던 글을 다시한번 훑어보며 스스로의 졸필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해의 폭도 넓어진 듯하다. 이제 새로운 코너를 통해 다시 만나길 바라며, 혈우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항상 건강한 우리 혈우사회를 기대해 본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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