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늘 “귀하고 좋은 것을 해 주마”, “간식꺼리가 없으니 만들어주마”하시면서 처마 끝에 나뭇가지에 하나하나 깎아 매달아 놓은 곶감 두어 개를 빼 내고, 마당에 널어 말렸다가 양파망 주머니에 다시 넣어서 보관 중인 늙은 호박고지를 또 몇 개 꺼내서 시루떡을 앉혀 주시곤 했다.
그런데 그러던 할머니의 손주 위하는 마음이 가끔 난관을 만날 때가 있었는데, 집에 쌀가루 빻아 놔둔 것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쌀을 꺼내 이내 읍내 장터 방앗간에 나가면서 빨간 고무 ‘다라이(아주 커다란 벽돌색 고무대야-요새는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에 쌀을 가득 담아 그것을 빻아달라고 방앗간으로 들어가시곤 했다.
‘방앗간’ 왜 그렇게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던지, 한참 어른이 된 다음에도 나는 그럴 때 보았던 방앗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쌀가루를 만드는 기계는 시끄러웠고, 언제 닦았는지 알 수 없게 겉 표면은 각종 곡물 가루로 범벅이 된 것이 말라, 그대로 늘러 붙어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 옆에서 나오는 뜨끈뜨끈한 가래떡이 너무나 신기해서 쳐다보다가 하나 얻어먹었다. 또 옆에서 나오는 매운 고춧가루를 보고 가까이 갔다가 재채기를 하기가 일쑤였다. ‘방앗간’ 그 정취를 기억하는 세대는, 아마 내가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그런데 어느 날, 지극히 현대적이고 최신 문명인 유튜브 채널에서 그 방앗간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물론, 예전에 내가 보았던 먼지가 날리고, 곡물 가루가 늘러 붙은 오래된 빻기 기계 같은 건 없었다. 서양 베이킹을 하는 것처럼 너무나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떡을 만드는 주방 도구들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앗간’ 그 글자가 주는 정취가 그 모든 것을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낡은 방앗간 쌀 가루가 나오던 곳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 유튜브 채널 달방앗간의 밥 대신 먹기 좋은 현미찰떡, 현미영양찰떡 만들기
‘달 방앗간’ 토끼가 달에서 방아를 찧는다는 옛 전래동화에서 비롯된 것일까? 참 많기도 많은 예쁜 떡들을 만드는 영상이 올려져 있었다. 투박하게 자른 것보다는 한 입꺼리, 아침식사 대용으로 싸 두었다가 꺼내먹기 좋을 법한 사이즈로 잘라 만드는 떡 한 접시, 시대가 흘러 모양은 변했을지 몰라도,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잘 먹고, 자주 먹었던 백설기나 쑥떡, 절편, 인절미, 약과, 모두 ‘안 먹어봐도 맛을 알 것 같은’ 웃음이 나오는 그런 떡과 한과들.
그동안 유튜브 채널에서 많은 베이킹 채널을 봤고, 나는 그런 영상을 보는 것을 꽤 좋아한다. 바닐라 액기스, 각종 예쁜 색색이 색소, 예쁘고 몽글몽글한 생크림, 노란 커스터드 크림, 그런데 문득 방앗간 채널을 오랜만에 보고 있다 보니 그런 어떤 양 과자보다 소박하게 흰 백자 같은 그릇에 담긴 사탕절편 하나를 뺏어 먹고 싶었다. 봄이 와서 쑥을 보면 얼기설기 햅쌀가루랑 섞어서 쑥버무리라는 것도 해 먹어보고 싶었다. 아마 한 입만 먹어도 한껏 다가왔다 가는 봄의 향기가 입 안 가득하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달 방앗간’ 이 방앗간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예쁜 영상들이 계속 쌓이면 앞으로도 계속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어린 시절의, 혹은 떡의 향기를 찾아오지 않을까? 떡이 아니어도 배숙이나 모과차, 봉수차, 유자단지, 유자화채, 이제는 잊혀져 가고 있어 ‘그런 게 있어?’라는 아이들이 더 많지만 우리 고유의 음료나 과자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